조지 오웰이 1945년에 출판한 풍자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은 존스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주인을 쫓아내버리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만 결국 동물혁명을 주도했던 권력층의 독재 가운데 인간과 결탁한다. 그러나 이미 처음에 주창하던 동물주의 정신은 사라지고 “동물들은 이쪽저쪽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고 대선열차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실시간으로 전해져오는 한국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동물농장’을 펼쳐들고 몇 줄씩 읽어나가면서 소설이 아니라 마치 대선판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다니.
워싱턴포스트(WP)는 “추문과 말다툼, 모욕으로 얼룩진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비판했고, 영국의 선데이더타임즈도 “전 세계에서 호평 받는 문화를 수출한 나라인 한국의 대선 캠페인에는 영화 기생충보다 더 생생하게 엘리트들의 지저분한 면모를 보여주는 쇼가 진행되고 있다.”고 혹평하는 기사를 썼다.
‘동물농장’의 조지 오웰은 마치 올해 한국대선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을 써내려가고 있다. 입에서는 희망을 외치지만 경험도 없고 대안도 없을 뿐 아니라 경륜과 지성도 없고 성품도 모자란 동물들의 말은 요즘 들려오는 말들과 너무도 비슷하다. 각 후보들의 수많은 선거공약과 동물들의 이 외침을 비교해보자.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세상 온 땅의 짐승들이여, 들어라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래의 이 기쁜 소식을, 머잖아 그 날이 오리니 잔인하고 난폭한 인간들이 멸망하고 영국의 풍요로운 들판은 오직 짐승들만이 밝고 다니리.”
이 희망찬 장밋빛 선언으로 시작하면서 ‘나쁜 인간’들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게 된 지도부는 7가지 동물규칙을 발표한다. 1. 무엇이든 두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든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선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라는 7계명은 자신들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지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들은 글씨를 몰랐고 지도부를 장악한 돼지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조금씩 규칙을 수정하기 시작하면서 꿈꾸던 이상적 사회는 타락해버린다.
‘동물농장’에 이어 1949년에 발표한 소설 “1984년”에서 조지 오웰은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나고 단 세 국가만 남는 상황을 설정하고, 모든 가치관이 말살되고 기계처럼 복종하는 인간상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그러한 미래사회를 극복해야 한다는 경각심과 사명감’을 일깨워주었다.
한 소설가의 예지가 풍자 속에 반짝이며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 시대를 예견하며 예방책도 제시해주었지만 오늘 이 시대의 모습은 여전히 동물농장과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대선은 치러질 것이고, 누군가는 대통령이 되고, 어떤 그룹은 득의양양 하는 반면 다른 그룹은 전전긍긍하거나 지도자 동물들의 추악한 뒷모습 같은 거래를 통해 살아날 방법을 구하며 다닐 것이다.
대선판은 물론 언론계든 경제계든 문화체육계 등 모든 조직과 모임들에서는 ‘동물농장’이 쓰여지고 있는 것만 같다. 아직 대선열차는 달리고 있다. 도착하면 되는 걸까? ‘동물들은 이쪽저쪽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 소설의 마무리 같은 결론을 안고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한줄기 남은 빛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아무리 혼탁해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받은 우리가 짐승의 혼이 되어 땅으로 내려갈 수는 없음을 깨닫고 위로 방향을 정하고 걸어가기를 다짐한다면 그래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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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9.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