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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영원하다!

데멜리오스, 돈 카슨이 전하는 성경 권위 포기하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 소

오늘날 서구 크리스천은 성경의 권위와 관련해 여러 가지 명백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단지 위협이 명백하다는 사실만으로 성경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눈에 띄지 않게 다가오는 교묘한 위협이 회의론을 조장한다는 사실이다. TGC 전 대표인 돈 카슨(Don Carson)은 데멜리오스(Themelios)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포기하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들을 설명한다(How to Subtly Abandon Your Bible’s Authority).

 

 

선택적 증거에만 호소하는 번영복음의 최적 해독제는 체계적인 강해설교

난처한 구절주제 회피, 입장 정당화에 성경남용, 말씀앞에 경외감 사라져

 

선택적 증거에만 의존하는 위험성에 관해

 

선택적 증거에만 호소함으로 말씀의 권위가 약해지는 표류의 가장 심각한 형태는 건강, 부, 번영의 복음을 의미하는 HWPG(Health, Wealth, Prosperity Gospel) 설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번영을 주신다는 구절과 왕의 자녀가 되는 사실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구절을 서로 연결하라. 그러면 확실한 이론(case)이 하나 만들어진다. 

거기에도 조건이 하나 따라온다. 우리가 앞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내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 아니 그런 고난이 사실상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라는 등의 생각은 깨끗하게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말씀 왜곡은 너무나 자명하기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조금도 어렵지 않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교묘한 것이다. 교회 내 논쟁을 피하려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는 언급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뜨거운 주제(빈곤, 인종차별, 동성애 결혼, 남녀 차별)에 관해서 진통제(anodyne) 치료법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골치 아픈 문제들이 알아서 사라지겠지 라는 비참한 희망을 붙들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슬프다. 아무리 어려운 주제라고 해도 우리가 성경의 권위 아래에서 올바른 사고체계를 갖추려고 하지 않는다면 교인의 대부분이 결국에는 세상 문화가 만들어주는 사고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좋은 해독제는 체계적인 강해설교다. 왜냐면 강해설교는 텍스트가 말하는 그대로 설교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주제설교는 얼마든지 어려운 텍스트를 피해갈 수 있다. 물론 문화적으로 맹목적 시각에 빠진 사람들은 바른 설교를 하는 설교자를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 

 

난처한 구절과 주제의 회피에 관해

 

설교자가 이따금 특정 주제를 피하는 이유는 주제가 주는 어느 정도의 난처함 때문이다. 당혹감을 느낀다는 것은 설교자가 스스로 보기에도 설교를 통해 선포할 만큼 특정 주제(예를 들어 종말론이나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주제)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는 주제 자체에 느끼는 일반적인 불편함(예를 들어 예정론) 때문에, 교인들이 너무도 싫어하는 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또는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하나 설교자 자신이 정말로 싫어하는 주제라서(예를 들어 지옥과 영원한 심판) 그럴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설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추한 형태의 말은 이런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는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의 말씀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 본문도 예수님의 생애를 공부하다보면 만나는 다른 많은 구절과 마찬가지로 꽤 충격적인 방식으로 지옥을 묘사하는데요. 솔직히 저는 이 구절에 관한 설교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구절은 무엇보다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구절을 완전히 무시하고 설교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엄연히 성경에 있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설교자가 공식적으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설교자는 사실상 자신을 예수님보다 더 동정심 많고 민감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사악한 것 이상으로 기만적인 이러한 태도는 실제로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비정통적인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성경 남용에 관해

 

최근에 존더반 출판사는 ‘동성애, 성경 그리고 교회에 대한 두 가지 견해(Two Views on Homosexuality, the Bible, and the Church)’를 출간했다. 이 책은 두 가지 견해를 각각 “지지(affirming)”와 “지지하지 않음(non-affirming)”으로 구분하고, 

두 명의 저자가 양쪽의 견해를 대변하도록 구성돼 있다. 양쪽 다 말로는 “성경을 근거로” 논쟁을 벌인다고 한다. 

한때 “지지” 쪽의 견해조차 신앙고백적 복음주의자가 견지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던 반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지지하지 않는 견해뿐만 아니라 지지하는 쪽의 견해도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일종의 대안적 복음주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같은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성경이 동성애 결혼을 금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경이 동성애 결혼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동성애 결혼에 대해 “지지” 견해를 취하는 것이 구원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을 복음주의 진영 밖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명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예를 들어 에세이 ‘성 윤리에 대한 복음주의적 접근(An Evangelical Approach to Sexual Ethics)’에서 스티브 홈즈(Steven Holmes)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오직 믿음(Sola Fide), 나는 거기에 서 있어야 한다. 내가 걷는 곳과 우리 모두가 걷는 곳에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완전한 제사이고,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새롭게 하시는 보혈이다. 그리고 그 구원이 나를 포함한 것이라면 나의 모든 실패와 혼란 속에서도 구원은 유효하다. 또한 동성결혼을 긍정하는 나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겪는 모든 실패와 혼란 속에서도 구원은 역사한다. 신실하고 믿음이 확고한 내 친구들에게 구원의 희망이 없다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은 솔라 피데(sola fide)를 외치는 복음주의 주장의 남용이다. 나는 구원이 믿음을 고백하는 것 이외에 이성애를 긍정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을 만난 적이 없다. 오직 믿음만이 은혜를 전유하는 수단이다. 그 은혜는 너무나 강력해 인간을 변화시킨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구원은 왕이신 예수의 주권 아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9절부터 11절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 사상의 맥락에서 볼 때 그가 주장하는 것은 죄 없는 완전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보혈로 씻음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그러한 죄(탐욕이나 간음, 동성애 행위 또는 그 무엇이든)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죄가 그들을 정의하고 특징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솔라 피데를 외침으로 구원이 공로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 얻는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확증하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함이 구원의 산물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죄라고 선언하신 것, 그 죄를 짓는 자는 왕국에서 배제된다고 하는 죄도 그게 죄가 아니라고(non-sinfulness) 주장하며, 솔라 피데가 어차피 다 구원할 거니까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성경은 홈즈가 말했듯이 “실패와 혼란”에 빠져 미끄러진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말하지만 구원을 받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 근거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안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 자신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은 항상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동반한다. 

 

10.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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