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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하는 사회, 교회공동체가 해결한다!

CT, 마크 레그네루스 교수 글로발 리서치 통해 크리스천 비혼증가 이유

현재 지구촌은 출산율보다 심각한 결혼율 저하 현상을 겪고 있다. 최근 비혼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가족보다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졌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나이가 든 모습이나 생활에 대해서도 거의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인식이 변화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혼 혹은 자녀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 더 많다. 인식의 변화 외에 소득의 전반적인 감소 역시 혼인율 감소의 주원인이다. 미국의 경우 2018년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25세에서 34세 남성 중 35%만이 결혼했으며, 2005년 50%와 비교했을 때 급격히 떨어졌다. 

크리스천의 결혼/가정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해온  마크 레그네루스(Mark Regnerus is a professor of sociology a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and a senior fellow at the Austin Institute for the Study of Family and Culture) 교수는, 여기에 보수적인 크리스천들까지 동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결혼율 감소는 명확하고 무서운 궤적을 향해가며, 결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Can the Church Save Marriage?: Matrimony rates are in decline, even among conservative Christians. Here’s what that means for the future).

 

결혼은 인간이 사랑 또는 경제적 실용성의 이유로 지난 수천 년 동안 해온 일이다. 결혼에 관해 전통적,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여성보다 남성이 결혼에 더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다. 반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념적이며 단기적 관계 안에서의 새로운 규범을 따르며 ‘선택권을 계속 열어두기’ 위한 노력을 한다.

우리 시대 결혼의 또 다른 새로운 방해물은 바로 전염병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 경험으로 몇 달간 많은 결혼식이 지연되고 있으며 모든 새로운 관계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결혼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기 훨씬 전에 필자는 사회학자로서 특히 교회 안에서 결혼에 관한 생각이 어떻게 퍼져있는지 궁금해졌다고 밝혔다. 크리스천들을 결혼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결혼을 장려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미국 크리스천들은 이 주제에 대해 예외적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국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길 권하는 전반적인 문화적 메시지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져보았다.

안타깝게도 이제 학문분야에서 기존의 결혼의 개념은 구닥다리가 돼버렸다. 후기 윤리학자 돈 브라우닝은 학계에서 결혼은 이제 다른 단어와 같은 범주에 있는 기피단어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이라는 점까지 추가되면 동료들 사이에서 유행에 뒤처졌다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그럼에도 계속 조사를 했으며 지난 1년간 글로벌리서치 팀과 멕시코,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레바논, 나이지리아, 미국 등 7개국에 걸쳐 약 200명의 교회 청년들과 크리스천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27세였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결혼에 대한 회의론은 서구를 넘어 널리 퍼져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모스크바, 베이루트에서 라고스까지도 퍼져있었다. 자료를 연구하고 흩어진 퍼즐조각을 모으면서 전 세계의 젊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결혼과 관련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선택, 더 많은 선택, 더 큰 유혹, 더 높은 기대, 지속적 불안 및 고질적인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결혼과정에 관한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점을 충분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혼제도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직면했다.

스페인에서 의대를 다니는 25세 안데르는 곧 결혼한다. 의사인 동료와 6년 동안 교제한 후 결혼하는 이 남자는 결혼 전에 확신이 넘칠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 무엇이 두려운지 물었다.

그는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구속되고 타협해야 하니까요. 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모르는 것들이 있겠죠.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는 문제가 될 겁니다.” 그에게 정확히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지 묻자 “부부 사이에는 분명 다른 점이 발생합니다. 배우자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를 겁니다.” 6년간 교제했으면 누군가를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않냐고 묻자 “전 그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그가 대답했다.

안데르는 자신의 신앙을 지지해주는 성도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적 배경이 자신의 고민에 관한 충분한 도움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 느끼는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불안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불안이 자신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두려움은 병적이며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좋은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아섭니다.”

안데르는 결혼율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 시대의 기독교인 남자 중 한 사람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의 자료에 따르면, 조사한 7개국의 교회 성도들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 거쳐 결혼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예측 결과는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매주 교회에 참석하는 폴란드 여성의 76%는 30세에 결혼하고, 35세에는 88%가 결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과 스페인에서 같은 연령의 여성보다 약 10% 높은 수치다.

그러나 교회 성도들과 비성도들 사이의 결혼격차는 특히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매주 교회에 참석하는 남성의 72%가 35세에 결혼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정기적으로 참석하지 않는 미국 남성은 50%만이 결혼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음주의자들의 대응

 

이에 관해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2014년 오스틴 연구소가 한 전국적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세에서 39세 사이의 자칭 복음주의자 중 56%가 현재 결혼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같은 연령인구가 기록한 42%를 훨씬 상회한다. 4년 후에 실시된 조사에서 수치는 명백히 하락했다. 2018년 후반에 복음주의자 20-39세 중 51%가 결혼했으며, 전체 인구의 40%가 결혼했다. 숫자는 여전히 높지만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편, 동거하고 있다고 말한 복음주의자들은 같은 기간에 3.9%에서 6.7%로 증가했다. 동거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은 2014년 인구의 16%에서 2018년 말까지 27%로 증가했다. 설문에 응한 복음주의자들 중 소수만이 결혼이 ‘낡은 인식’이라고 말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은 결혼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다.

 

또한, 공식 교회 통계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백한 감소를 기록하고 있다. 가톨릭 간행물인 교회 통계연감을 살펴보면 미국의 가톨릭 결혼은 1965년 이래 10개의 장례식마다 9개의 결혼식이 있었으며, 59%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는 이 비율이 10대 3.7로 감소했다. 평균연령이 40세 미만인 젊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목회하지 않는 한, 참석해야 할 장례식이 결혼식보다 더 많을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요인 중 하나는 안데르와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적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부부가 서로 더 헌신할수록 의심은 줄어들며, 특히 재정과 관련된 경우에 그러하다. 결국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으로 함께 좋은 것을 얻을 것이다(전4:9-12). 그러나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은 더는 이런 식으로 결혼을 인식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국가를 불문하고 물질적, 사회적 또는 심리적 불확실성을 종식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로, 모스크바에서 만난 29세의 정통 기독교인 빅터를 포함해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에게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갖고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내가 불안정하거나 불행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할까? 작고 후진 집에 살 수 있을까? 현대 대도시의 상황에서 가족을 만든다면 여러 문제를 직면하게 될 겁니다”라고 빅터가 말했다.

이 불확실성이라는 전염병이 어떻게 퍼졌는지에 관한 것은 성 혁명, 축소된 경제 또는 표준 이하의 남성 등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반면, 결혼생활에서 얻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 크게 바뀌었다.

결혼은 대부분의 크리스천 사이에서도 이제 성인이 되는 기본적인 관문이 아닌 성공적인 삶을 증명하는 하나의 주춧돌로 인식되고 있다. 구조물을 마무리하려면 주춧돌이 필요한데, 결혼이 바로 그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있어야 건물이 세워지며, 이 과정에서 마모는 반드시 발생한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봤을 때, 재정이 가난한 상태의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만, 이는 젊은 시절에 극복할 수 있는 일시적 고생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가난하다는 것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러셀 무어는 그의 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폭풍 속의 가정”에서 탄식하면서, 결혼이 자기희생이 아닌 ‘자아실현의 도구’가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미시간 출신의 27세의 클로이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설명했다. “20대 때에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되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만연한 이 관점으로 본다면 결혼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희생은 30번째 생일 즈음에 자연스레 얻게 되는 선물이 아닌 사회적으로 학습된 행동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제도의 위기는 발전된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고스 출신의 28세 미혼 오순절파 교인 디디는 분명한 결혼조건을 갖고 있었다.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을 때”라고 그녀가 말했다. “제가 목표한 모든 것을 성취한 다음 결혼을 할 거예요.” 라고스 출신의 또 다른 24세 미혼 여성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오 제발! 결혼으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없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인터뷰한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들은 결혼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생에 대한 낮은 관용을 나타냈다. 자신을 지나치게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들은 평생의 배우자를 만나는 이야기에 주저했지만, 실은 이를 갈망하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따르지 않은 한 부부는 미래를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현재 연구 중인 폴란드인 가족의 사례가 그 대표적 예다. 24세 파웨와 29세 마르타는 현재 크라쿠프에 거주하는 부부다. 마르타는 한 살짜리 딸을 키우는 주부이며 파웰은 인근 대학의 철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크라쿠프의 이 부부는 여러 방법으로 현실과 맞서 싸웠다. 마르타는 결혼식이 온 동네 사람들의 축제로 여겨지는 작은 마을 출신인데, 두 사람은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해 돈을 절약했지만 그로 인해 사회적 유대를 시험당하기도 했다. 파웨는 “우리가 큰 피로연을 열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웨 부부는 친구와 이웃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결혼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들에게 결혼이 이전과 바뀌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마르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20-30년 전과 비교해 현재의 결혼은 위안을 찾기 위한 목적이 더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제 가족과 부모 때를 생각해보면 그때는 돈이나 집이 없이도 시작했죠.”

그녀와 파웨는 현대의 트랜드를 따라가지 않고 결혼에 대한 전통적이며 기본적 관점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이 함께하는 삶은 쉽지는 않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창조자’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결혼은 현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들처럼 현실적이고 기본에 충실하며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다음단계로 접근하는 부부가 많지는 않았다. 결혼은 점점 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지고, 더 이상 전 세계 성인 대다수가 선택하고 누리는 관행으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특권층만이 선택하는 자발적이며 소비지향적인 행위로 인식되기도 한다. 결혼을 통한 이점은 두 사람의 부와 소득을 통합한다는 점이 있는 반면에, 서로에게 경제적 도움이 못 되는 경우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결혼을 통해 사회 정의를 이룬다고 생각할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이 반드시 문제는 아니며 강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좋은 점은 결혼을 늦게 할수록 결혼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더 적은 수의 사람들만 결혼할 것이며, 크리스천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결혼율이 줄거나 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여성들이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기다리기 지쳤다”라는 말을 자매들에게서 자주 듣는다. 대부분의 성도 중에는 결혼에 관심이 있는 여자의 비율이 남자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종종 이러한 추세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려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는 선택의 폭이 넓은 사람들은 능력이 적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며, 그 힘은 섹스를 포함해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된다.

많은 크리스천 자매들에게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은 그들을 이중적 고민에 빠지게 한다. 결혼을 약속할 만한 상대와 혼전에 잠자리를 가져도 될까? 아니면 혼전순결을 지키고 그가 날 떠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 등의 고민을 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05.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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