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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틀란틱, 데렉 톰슨, 미국교회 출석 감소 시작되게 한 3가지 사건 설명

1960년대부터 1990년 초반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미국 교회 성장세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갑자기 하락세로 접어들게 된다. 바로 교회나 성당 등 종교적으로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현저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실제로 대면하고 있는 “넌스(Religious Nones)”들이다.

결국 2019년 바나리서치 설문 조사 결과 현재 미국인 중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64%일 정도로, 1990년 후반부터 시작된 교회 성장 하락세는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도대체 1990년대에 어떠한 일이 있었던 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디 아틀란틱”의 데렉 톰슨(Derek Thompson)은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해 30년 전 과연 어떠한 일들이 크리스천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했는지를 분명하게 짚어준다(Three Decades Ago, America Lost Its Religion. Why?, “Not religious” has become a specific American identity-one that distinguishes secular, liberal whites from the conservative, evangelical right).

 

전통적으로, 미국은 세계열강 중 유일하게 크리스천 인구가 대다수인 국가였다.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미국인 10명 중 9명이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나 성당에 다니며 자신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교회 출석율은 안정적이어서 1960년대의 ‘성-혁명’, 1970년대의 ‘방황과 걱정’ 시대, 그리고 1980년대의 “탐욕은 선하다”는 시기에서도 교회는 난공불락의 성채처럼,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로 가면, 상황은 돌변한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갈수록 교회나 성당에 등을 돌린 미국인들이 갑자기 널뛰듯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적으로 어떠한 소속이나 유대를 가지지 않는 미국인들의 증가는 단순한 유행이나 순간적인 현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사건들이 발생했는지를 파악해야만 교회출석율 감소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

노틀댐대학교 종교사회학과,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는 미국인들이 기존 종교 틀 안에서 멀어지게 된 역사적 사건들로, 1)공화당과 기독교 우익의 연합 2)냉전시대의 종말 3)9.11테러 사건을 꼽는다. 

먼저 2)와 3)을 설명하고, 1)정치와 종교의 결탁을 살펴보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의 제국 구소련이 건재하는 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미국인들의 신앙고백은 유효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대량 살상 무기를 서로에게 겨눈 채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군비경쟁에 열을 올렸다.

이른바 냉전(Cold War)의 시대였다. 한반도의 분단을 포함해 인류를 양분했던 비극적인 대립 체제로서의 냉전은 이후 상대 진영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 경쟁, 그리고 자칫 지금까지의 전쟁과는 양상이 다른 핵전쟁의 위기까지 감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동서 냉전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의 붕괴와 구소련의 몰락이 대결과 분열의 시대를 끝냄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됐다.

절대 악의 종말과 동서 냉전 종식으로 경건했던 미국인들은 나사가 풀린 채로 살아가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지정학적 대적은 단지 구소련만이 아니었다. 바로 하나님(알라)을 두려워하고,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급진주의적 이슬람 테러리즘이 구소련 다음으로 미국을 힘들게 했다. 수차례의 폭탄 테러 끝에 알-카에다는 미국의 심장 뉴욕 한복판에서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테러를 자행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수많은 미국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천성적으로 파괴적이라고 선동하는 무신론자들에게 알-카에다는 유용한 근거로 자리잡게 됐다.

냉전의 종말 그리고 9.11 사건도 중요하지만, 교회에 다니던 미국인들이 교회를 등지게 한 중요 함수는 바로 정치와 종교의 결혼, 즉 공화당과 기독교 우익의 연합이다. 

기독교 우익을 처음 정치무대로 유인한 것은 공화당이었다. 

공화당은 1964년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참패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화당의 장래가 비참하리라는 판단 아래 당의 기반을 넓히는 전략을 짠다. 기독교 보수와 손을 잡게 되는 계기다. 공화당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반 확대의 일환으로 기독교 우익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그 이전의 50년을 돌아보면 공화당은 열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4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의회는 24회기 중 두 차례 밖에 장악하지 못했다. 당의 기반 확충이 절실했다.

기독교 우익과는 공통점이 많다고 본 공화당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끌어들였다. 공화당 지도부는 도덕적다수(Moral Majority) 기독교도연합(Christian Coalition) 같은 조직을 이용하고 라디오 토크쇼와 설교를 통해서 보수의 정치 어젠다를 전파했다. 수백만에 이르는 유권자 집단을 확보함으로써 공화당은 그 후 실시된 여섯 번 대통령 선거에서 네 번 이겼고 상원의 12회 회기 중 7회, 하원은 10년 간 내리 장악하는 성과를 올렸다.

공화당과 제휴한 기독교 우익은 90년대가 되면 당의 동반자에 만족하지 않고 당의 권력구조 장악에 나선다. 교회조직을 이용해 지방 카운티의 공화당 조직에서 시작해서 주 단위 당 중앙조직을 장악하고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공화당은 이제 기독교 우익의 의사에 반해 정책을 실현하기 어렵게 됐다. 공화당의 한 간부는 "이제 공화당은 정치조직이라기보다는 종교 조직의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할 정도로 기독교 우익이 공화당 내에서 행사하는 역할이 커졌다.

미국에서 기독교 우익은 유권자는 7인 중 1인정도로 추산되지만 이들은 평균적으로 일반 시민보다 더 열심히 투표하고 정치적으로도 더 열성적이어서 공화당의 정치적 어젠다를 결정하는데 참여해 그 영향력이 크다. 부시가 다수 국민의 비판을 받는 이라크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 우익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는 열세에 몰려있었는데 민주 공화 지지도 차이가 근소한 주에서 부시를 당선시켜준 것은 기독교 우익의 조직표였다. 부시의 정치참모인 칼 로브가 기독교 우익 교회 목사들에게 전화해서 기독교 근본주의 표를 부시에게 몰아줘 그의 재선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정책이다. 낙태, 이혼, 동성애, 줄기세포연구, 환경 문제 등에서 기독교 우익의 주장은 절대적이다. 기독교 우익은 이 분야에서 민주당 좌파나 진보 세력과 대립한다. 선거에서 이들 기독교도들이 공화당에 투표하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다. 

결국 공화당과 기독교 우익의 결혼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젊은 진보주의자들이나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크리스천들이 기독교 우익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스미스 교수는 분석한다. 한마디로 심하게 말하자면 기독교 우익은 기독교의 간판을 내걸고 기독교를 욕보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스 두테트는, 지난 2011년 "신권통치의 재탐방"이라는 칼럼에서 미국의 많은 리버럴과 교회를 안 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종교적 보수주의자, 다시 말하면 기독교 우익을 단순히 정치적 반대자로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일종의 실존적인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American Theocracy Revisited). 그 이유는 이 종교적 우익이 정상적인 정치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크리스처니티투데이가 이러한 현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기독교 우익에서 “복음주의”를 구분하기 위해서 “복음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제하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연재하는 것도,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정치 영역에서 걸러내기 위한 사역인 것이다. 

결론으로, 미국 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과 누가 더 진보적인 사회주의자인 민주당 대선 후보들로 상징되는 극심한 양극화에 빠져있다. 2020년 대선 역시, 또 다시 보수와 진보 이념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교회공동체는 이러한 때 좌우익을 아우르는 크리스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 우익과 공화당의 연합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1.0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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