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크리스천” 즉 명목상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다. 주로 기독교 전통이 있는 나라, 민족, 단체, 가문에서 생의 통과의례로서 유아세례, 결혼식, 장례식 때만 교회에 나오고, 평소에는 교회 예배에 거의 나오지도 않으며, 기독교 활동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이 명목상 기독교인들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다. 이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기독교와 접촉을 가진 사람들이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며, 또 그렇게 불리운다. 그러나 순전한 기독교 신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세 가지 필수요소 1)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신앙고백 2)규칙적인 교회 예배 출석 3)기독교 신앙 활동(선교, 봉사,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 이런 것들은 결여돼있는 그야말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다.
명목상 크리스천의 문제는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심각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행치 않는 자들”(눅6:46),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는 자”(딤후3:5),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계 3:1절 이하) 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기독교를 싫어하지 않는다. 현실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느낄 뿐이다. 따라서 1998년 로잔대회에서는 이들을 새로운 선교 대상으로 보고 구체적인 전략까지 제안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무늬만 크리스천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CT)는 각 분야 전문가 3인에게 물었다. 이들이 아예 신앙을 버리기 전에 다가가 어떻게 하면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지를?(Three Views: How Can Churches Reach Nominal Believers Before They Become 'Nones'?: Experts discuss how to prevent nominal Christians from leaving the faith).
충격을 가하라
(드류 다이크, “리더십저널” 편집장이며 “이전에는 그리스도인이었던 세대: 청년들이 신앙에서 떠나는 이유그들을 신앙으로 되돌리는 방법(Generation Ex-Christian: Why Young Adults Are Leaving the Faith气nd How to Bring Them Back)”의 저자)
맹렬 무신론자들이 복음 전도에 던진 도전들에 비하면,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인다.
어쨌든 이들은 믿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자처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종교를 비난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않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기에 조금만 건드려 주면 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벼운 토닥거림이 아니라 충격일 것이다. 명목주의(Nominalism)는 본질적으로 영적 착각(spiritual delusion)이다. 이것은 특히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복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최소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자기들의 입장을 정확하게는 이해하고 있다. 반면, 이들은 여러 비성경적 이유를 들어 자기들이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할머니는 침례교 신자였습니다.” “나는 성탄절 같은 절기 때는 교회에 갑니다.” “나는 선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심각한 오해들은 성경적 진리를 통해 민감하면서도 예리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추종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들 만한 말씀을 하신다. “수많은 무리” 쪽으로 몸을 돌이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6-27절).
우리도 이 말씀을 듣고 주춤할지 모른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하고, 믿음에 장애물이 될 만한 것들을 제거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는 잠재적 추종자들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셨고, 자신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주지시키셨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솔직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냉철하게 말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라. 우리는 쓸데없이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력적이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기독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처럼 해야 한다.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고인이 된 기독교 지도자 존 스토트는 “기독교의 기본진리”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얼마나 많은 대가가 필요한지 단 한 번도 숙고해보지 않은 채 그분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 결과 기독교 세계는 소위 ‘명목상 기독교’라는 매우 수치스러운 이름을 얻게 됐다.”
교회를 위한 나의 기도는 이처럼 수치스러운 이름이 지속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언제가 복음이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상황과 직면할 때, 어떤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은 진정한 신앙의 반응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가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버리더라도 그리스도가 얼마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분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착각에서는 벗어날 것이다.
적극적으로 환대하라
(켄다 크리시 딘, “유사 그리스도인: 십대들의 믿음이 미국 교회에게 말하고 있는 것(Almost Christian: What the Faith of Our Teenagers Is Telling the American Church)”의 저자이며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청년, 교회, 문화에 대해 가르치는 교수)
성경의 기록만 본다면 유두고를 이 세상 첫 번째 “불신자”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 다녔지만 결국 그 교회에서 떨어져 버렸다. 말 그대로.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바울은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서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강론했고 무리 중에는 유두고라는 청년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열린 창문 옆에서 위태로이 졸고 있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바울은 유두고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강론을 중단하고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팔로 그 젊은이를 안고서 놀란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행20:10).
사회학자인 노트르담대학교의 크리스천 스미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 청년들은 스스로를 명목상의 크리스천이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18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들 중 1/3은 아직까지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한때는 유두고처럼 교회에 다녔다.
작가인 엘리자베스 드레셔에 의하면, 불신자들 중 70%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다. 다시 말해 이것은 수많은 유두고들이 다른 누군가의 자녀가 아니라 우리의 자녀라는 것이다. 그들은 주일학교에 다녔고, 침대 위에서 성경 이야기를 들었고, 저녁 식탁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말했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들이 이런 운명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어야 하는가?
나는 이른바 “불신자들의 급증”이 종교를 거부하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과거에도 불신자들과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의 불신자들은 문화적인 공격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불신자들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지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교회 뒷문 구석에 맥 빠진 채 멍하니 앉아 있거나 졸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설교를 너무 길게 해서는 안 된다고 교회에게 알려주고 있는지 모른다. 불신자들은 교회를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교회가 그들의 실재 삶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다.
명목상의 기독교라는 문제를 다루는 일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미스가 수행한 ‘청년과 종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몇 가지 요소들이 명목상의 청소년 크리스천들을 신실한 성인 크리스천이 되도록 준비시켜 준다고 한다. △스스로 매우 헌신적인 신앙을 배양하는 것 △지원과 도움을 받을 만한 신앙의 선배들을 갖는 것 △충분한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 △특별히 부모에게서 헌신적인 신앙을 배우는 것과 체험적인 신앙을 습득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 모든 것들은 성인이 되기 전에 요구되는 것들이다.
감리교 목사인 드류 다이슨은 프린스턴신학교 연구 논문에서 의미, 소속, 적극적 환대를 강조하는 교회들은 “신앙의 표류”를 겪는 청년들이 다시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교회들은 명목상의 신앙을 가진 유두고들을 예배당 한가운데로 데려와야 하며, 그의 주변에 신실한 스승들과 자원들을 포진시켜야 하며, 그를 의미와 소속과 적극적 환대라는 경험에 푹 잠기게 해야 한다.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이 설교를 늘어놓기보다 먼저 품어주는 사람들, 가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경축하는 사람들, 교리와 정치가 아닌 은혜에 입각해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교회로 경험한다면, 더 이상 예배당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속적인 제자훈련
(에디 깁슨, 풀러신학교 명예교수이며, “교회의 거듭남: 탈기독교 세계에서의 사역을 위한 바울의 비전 적용(The Rebirth of the Church: Applying Paul’s Vision for Ministry in Our Post-Christian World)”의 저자)
어째서 수많은 미국인들은 이름만 크리스천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복잡하며, 진단 또한 신중해야 한다.
명목성은 고정돼있는 상태가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연구들에 따르면, “명목상의 크리스천” 대다수는 결국 “불신자”가 되고 만다고 한다.
몇 가지 주요한 요인들을 살펴보자. 교회는 부주의하게도 스스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에 굴복함으로써 이러한 상황들을 불러왔다. 문화적 압박을 받는 교회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 소속돼있다 할지라도 평생 동안 헌신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이 될 위험에 처한 교인들은 대부분 격려와 책임과 사역의 기회를 경험할 수 있는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피한다. 이들은 “실제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아무 생각이 없는 소비자들이다.
다른 한 극단에는 또 다른 위험에 처한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사역으로 인해 힘이 다 소진된 교회 지도자들이다. 지친 그들은 사역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거나 사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더 이상 특이한 모습이 아니다.
또 한 가지 불행한 일은 잘못된 성경해석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지배적 세속문화에 취약하게 만든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친근한 관계망 안으로 모음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내야 한다. 명목성에 계속해서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 비슷한 문제로 씨름했던 크리스천들도 명목상의 크리스천들을 도와야 한다. 명목성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다.
더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도전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특별히 두 가지 프로그램은 널리 이용되어 고무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알파코스와 라이프웨이시리즈 도서로 진행하는 마스터라이프(Master Life)이다. 1977년 런던의 한 성공회 교회는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영국인들과 교회를 싫어하는 영국인들에게 복음의 기본적인 진리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알파코스를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오순절파 교회들부터 로마가톨릭교회들에 이르기까지 알파코스를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점점 많아졌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15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알파코스에 참가했다. 예를 들어, 파사데나언약교회의 리더들은 기본 프로그램뿐 아니라 알파결혼코스, 알파부모코스까지 이용한다. 어떤 부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수용 제한으로 코스들이 조기에 마감돼 다음번에 수강해야 할 형편이에요.”
캘리포니아의 앨라배마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리랜드 햄비 목사는 12년 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신자들을 위한 심화체험훈련으로서 마스터라이프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어떻게 말씀 안에서 살아가고, 어떻게 믿음 안에서 기도하고, 어떻게 성도들과 교제하고, 어떻게 세상에서 증인된 삶을 살아가고, 어떻게 타인을 섬겨야 하는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진정한 회심은 한평생을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별적인 모임들은 소그룹으로 진행된다. 모임들은 일주일 이상 진행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을 포함하기도 한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리스도를 섬기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관계중심적이고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08.3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