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에서 보수적 크리스천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말이 최근 부정적인 이미지로 브랜딩화 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이에서 벗어나야만 영향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스턴일리노이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라이언 버지 박사는 최근 크리스처너티투데이를 통해 미국의 복음주의가 인종적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미래가 밝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Race, Religion, and the Future of American Evangelicalism: Three important trends regarding race and faith that must be considered as we try to lead evangelicalism through this era).
라이언 버지 박사는 지난해 트윗트를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복음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된 단어들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백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2017년에는 ‘백인 복음주의’라는 말이 동시에 사용된 것이 가장 많았다고 꼽았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들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된 ‘백인 복음주의자’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 리서치 기관들이 동성결혼, 낙태, 이민, 그리고 더 나아가 다가올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할 계획인지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러한 조사는 늘 있는 일이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유권자 5명 중 1명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다. 이것은 곧 미국에서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투표 집단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 10명 가운데 약 8명이 최소한 1명의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란 도대체 누구일까? 많은 여론조사원과 저널리스트들은 복음주의자는 대개 백인이며, 도시근교 거주민, 미국인, 남부인, 공화당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칭 복음주의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러한 범주에 속해 있지 않다.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관심에 대해 조사를 하면 2가지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복음주의자”가 “백인”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복음주의자에 대한 정의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리 내려진다는 사실이다.
복음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유일하고도 주된 방법은 투표가 아니다. 정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가 복음주의자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으며, 규정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백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은 더욱 다양해졌고, 복음주의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복음주의자”는 “백인”이라는 등식은 복음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여론조사방식은 비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복음주의자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을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정치적 대적 아니면 아군으로 인식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백인 복음주의자들 역시 자신들만의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타 인종 크리스천들에 비해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2017년 공공종교연구소(PRRI)는 ‘'트럼프 시대의 당파 양극화: 2018년 미국가치보고서'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도의 다수는 이민자들이 미국의 가치와 관습에 위협을 준다고 생각한다.
설문조사에서 백인 개신교도의 절반 이상인 57%가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를 위협한다고 답했으며, 유색인종 개신교도들은 대체로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특히 히스패닉 개신교도의 63%와 흑인 신자의 67%가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또 2045년 미국의 인구가 아시안·흑인·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센서스의 결과 보고에 대해 백인 복음주의 교인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백인 크리스천들의 54%는 이러한 인종의 다양성 변화가 미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흑인 신도들의 80%, 히스패닉 신도들의 79%가 인종의 다양성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의 반이민 감정이 미국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의 땅이라는 '크리스천 내셔널리즘'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앤드류 와이트헤드 클렘슨대 사회학 교수는 "'크리스천 내셔널리즘'이 백인 복음주의 신자의 이민자들에 대한 사상을 생성했다"며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은 미국을 크리스천 국가로 생각하고 인종의 경계를 굳힌다"며 "이는 반이민 정서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라이언 버지 박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복음주의와 백인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의 다양성과 보조를 맞추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2)아프리카계와 라틴계 중 무교(종교가 없음) 젊은 층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주시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3)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이 예배 참여율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백인으로 집약되는 복음주의는 미국의 인종적 다양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오는 2045년에서 2050년 사이에 백인 인구의 비중은 절반 아래로 감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 인구의 평균연령은 급격하게 높아지지만 다른 인종의 연령대는 상대적으로 젊어지고 있다. 또 소수인종의 출산율이 백인을 추월하게 된다.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복음주의 구성판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밖에도 ‘무종교’ 인구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된다. 공동의회선거연구소(CCES)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21세 미만 히스패닉과 흑인 인구의 3분의 1이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정의했다.
조사 연령대를 40세로 확장할 경우에도 히스패닉은 20%, 흑인은 30%가 스스로 종교가 없다고 밝혔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소수인종의 종교적 상태를 보여주는 통계 결과다. 이는 복음주의 신앙이 저변을 확대할 여지가 소수계에서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게다가 예배 참석률은 백인보다 소수인종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매주 예배에 출석하는 교인의 비중을 인종별로 조사한 결과, 백인은 31.4%에 불과했지만 아시안에서는 51.7%로 급증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는 인종이 섞인 경우가 38.1%, 히스패닉이 36.7%, 흑인36.4%를 차지했다. 백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재의 복음주의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이 드러나는 통계다.
특히 주 1회 이상 예배를 드리는 비중은 히스패닉에서 30%, 아시안 23.2%로 나타나 백인의 19.6%를 크게 앞질렀다. 이 통계를 정리해 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비율이 백인에서는 51%로 나타났지만 아시안과 히스패닉 인구에서는 거의 80%에 육박한다. 흑인에서도 60%에 가까운 인구가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 10년 동안 복음주의는 백인 중심이라는 수준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통계는 젊은 소수계 인구가 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참석하며 복음주의 교회의 강력한 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 나누면서 복음주의가 영향력을 유지한다면, 앞으로 복음주의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으로, 크리스천의 연합은 최고의 성경적 가치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며 빌립보 교인들에게 했던 바울의 권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두 서로가 필요하고 모두가 귀하다던 비유를 생각해보자.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나오듯이 그리스도의 연합은 민족, 계급, 성별 같은 로마사회를 구분 짓던 관습들을 능가한다.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표시도 필요 없다.
백인 복음주의로 부정적으로 브랜딩한 복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인이라는 동질의식, ‘끼리’문화는 인종, 경제, 연령, 성별 같은 것들로 사람들을 분리한다. 우리가 피해야 하는 이 세대의 방법인 것이다(롬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