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역수출(Mission in reverse)”은 이제 지구촌 선교 현장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가톨릭 신부인 알리 은나에메카는 캐나다 퀘벡 주 세틸에서 570km 떨어진 외딴 탄광 마을 셰퍼빌 사이를 2주에 한 번씩 오간다. 기차로 꽁꽁 얼어붙은 땅을 달려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리는 거리지만 은나에메카 신부는 외딴 산골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크리스천 선교사들이 세계 구석구석의 외딴 마을을 찾아가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들이 찾아다닌 마을이 대부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선교사의 대부분이 서구 열강 제국 출신이었다면 이제는 구도가 완전히 뒤집혔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는 가난한 국가에서 신앙심이 더 높다. 부국과 빈국 사이 신앙심 격차가 커지면서, 빈국의 선교사들은 선진국의 부자들을 지옥불에서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됐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은나에메카 신부도 그 중 한 사람이다(Missionaries from the global south try to save the godless West: Preachers from poor countries are targeting the rich world)
월드 크리스천 데이터베이스(World Christian Database)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선교사의 수는 40만 명에 달한다. 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참여한 토드 존슨은 선교사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 불완전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이 자료는 최소한 2년 이상 활동한 선교사들만을 세고 있지만, 열흘 씩 “단기 해외 선교”에 나서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크리스천들이 박해받는 곳에서 몰래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처럼 불완전한 자료에서도 경향은 뚜렷하다. 한마디로, 비서구 국가 출신의 선교사가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가장 많은 선교사를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지만,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유럽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반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대륙 출신 선교사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 선교사는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32% 증가했고, 한국 출신의 선교사는 같은 기간 50% 증가했다. 선교사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미국, 브라질, 러시아 순이었다.
가장 독실한 크리스천들은 아프리카와 미주 대륙 출신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므로, 이 지역 출신의 선교사가 많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10년에만 해도 전 세계 크리스천의 3분의 2가 유럽에, 4분의 1이 미주 대륙에 살고 있었다.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은 1.4%에 불과했다. 한 세기가 지나자 37%가 미주 대륙에, 24%가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고향을 제외하면 은나에메카는 선교사의 전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1816년 전도를 목표로 설립된 카톨릭 성모마리아 선교사역회(Missionary Oblates of Mary Immaculate) 소속이며, 카메룬과 이탈리아에서 10년 간 성직자 교육을 받았다. 과거 서구의 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지 주민들”과 4년 간 함께 생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한 사람들의 자손이다. 중간에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도 있고, 아예 신앙생활을 그만 둔 사람들도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도 있다.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짧게, 많아야 수 년 정도 활동하며, 특별한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지원 정도나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활동하는 독립(자립) 선교사들도 있다. 이렇게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독자적 선교사들의 수도 무려 4만 명에 달한다.
예수께서 한 때 말했던 것처럼, 부자를 구원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에콰도르 출신의 20세 청년 에콰르도 리오스는 볼리비아에서 휴가 중이던 선교사들을 만난 후 기독교로 개종했다. 지금은 영국의 세속적이고 싸늘한 거리에서 18개월째 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일도 많지만, 적어도 열 명 이상을 개종시켰다고 자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선교사들의 역할은 개종 그 이상이었다. 그 유명한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빈자와 고아들을 위한 의료 기관을 운영했다. 교육 역시 전도의 중요한 일부였다.
결국 우리 세대의 선교사들 역시 개종만을 강요하기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움을 강조한다. 에콰도르, 콜롬비아, 마다가스카르 등 다양한 지역 출신들이 함께 활동하는 영국 내 선교사회는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선교사들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한다. 탄자니아 출신의 스티븐 음셀 선교사는 아일랜드와 케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제는 탄자니아의 이웃국인 우간다에서 20년 째 활동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 출신의 선교사들이 자신이 태어난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패로 얼룩진 환경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평화 구축 활동과 난민 캠프의 영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현지 출신의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더 잘 다가설 수 있다. 한 세기 전, 서구의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서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2016년에도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우간다 전통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며 구충제를 입에 털어 넣는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작년에도 호텔 종업원을 폭행한 미국인 선교사가 우간다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성직자들은 현대 서구의 세속성을 도전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서구의 변화에 좌절하기도 한다. 특히 한 세기만에 가장 “비종교적인” 대륙이 된 유럽의 변화는 놀랍다.
영국에서 2년 째 활동하고 있는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한 선교사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길에서 만난 한 남성에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상대가 크게 화를 내면 “내가 당신에게 무신론으로 개종하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냐”고 소리를 지른 일도 있었다. 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는 가톨릭 국가 특유의 “형제애, 자매애”를 느끼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도 털어놓을 정도다.
서구의 비종교성에 대응하기 위해 좋은 기독교인의 기준이 조금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마땅히 매주 교회에 가야 하지만, 규칙적으로 교회에 가는 인구가 10%에 불과한 독일에서, 그 수치가 89%에 달하는 나이지리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은나에메카는 “교회가 원할 때 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빈국 출신의 선교사가 서구 입국에 필요한 비자를 얻는 것도 까다로운 문제다. 의심 많은 이민국이 다른 사람의 영생을 위해 입국한다는 선교사의 말을 믿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으려 하는 이민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은나에메카는 큰 조직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작은 교회 출신의 선교사들은 유럽과 미국의 이민 규정이 까다로워지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과거 서구의 선교사들이 험한 항해와 사자에게 먹힐 위험을 무릅썼다면, 현대의 선교사들은 무례한 소수의 무신론자나 비자를 받기 위한 긴 줄에 굴하지 않고 서구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