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국적으로,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마다 개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각 학교는 새 학기를 맞아 학부모들을 초대하는 컨퍼런스를 열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규칙과 학습내용 등을 소개한다. 최근 들어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의 협력 관계를 통한 교육법이 점차 확산하면서 학교에서도 학부모를 초대하는 행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날짜를 기억했다가 부부가 함께 방문해 자녀를 담당할 교사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학교 분위기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고, 책으로도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월스트리트 저널은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로 인해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나 심각한 정서적, 심리적 장애를 받고 있는 연구 결과를 보도한다(Kids of Helicopter Parents Are Sputtering Out: Recent studies suggests that kids with overinvolved parents and rigidly structured childhoods suffer psychological blowback in college). 2회에 걸쳐 부모의 지나친 교육 열기로 병들고 있는 대학생들의 실태와 함께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맹모삼천”이라는 한자 숙어는 교육을 위해 이사를 3번이나 했다는 뜻으로, 항상 한인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자녀교육은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첫 번째는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다. 그들은 아이에게 언제나 잔소리를 하고 학교와 교사들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는 부모다. 둘째는 “폭격기 부모”(stealth bomber parents)다. 자녀에게 부모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인생이 막장인 것처럼 자신의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하고 저주스러운 말들을 쏟아 붙는 유형이다. 세 번째 유형의 부모는 앞의 제시된 두 부모와는 정반대인 “인공위성”(satellite parents)이다. 이들은 자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하던 “이제는 네 인생 네가 책임지며 살아라”,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이다. 이 세 가지 유형의 부모 모습 중에 가장 보편적이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유형은 헬리콥터 부모들이다. 현대사회의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심각하게 두각이 되는 헬리콥터 부모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자녀 위에서 부모가 헬리콥터처럼 떠다니며 맴돈다.’ 이 말은 헬리콥터가 가진 장점의 특성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헬리콥터는 높은 위치에서 제자리 비행(hovering)을 하면서 측방과 후진으로 쉽게 전환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수직으로 독수리처럼 비행이 가능하기에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자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거나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아니하는 것을 보면 가차 없이 자녀에게 방향의 괘도 수정을 바랄 뿐 아니라 지나친 강요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헬리콥터와 같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여 소위 일류 대학에 보냈으나, 대학에 진학한 자녀들이 심각한 정서적, 심리적 장애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학장을 역임한 빌 데레시비즈(Bill Deresiewicz)는 자신의 책(Manifesto Excellent Sheep: The Miseducation of the American Elite and the Way to a Meaningful Life)에서, 정말 우수한 학생들이 인생에서 실패를 맛볼까봐, 심각한 우울 증세와 함께 정신적 문제들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다.
그가 목도한 학생들은 한마디로, 학업 성적이나 커뮤니티 봉사 그리고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스펙”을 골고루 갖춘 영재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진지한 상담을 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마디는 바로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라는 말이다. 실제로, 전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국 부모들의 간섭과 통제는 지나칠 정도다. 딸이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아내와 이혼까지 불사하겠다는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4년 걸리는 학업 과정을 7년 정도로 조정해, 학과목 선정에서 전공교수 면담에 이르기까지 관리(micromanaged)해, 전공을 경제학으로 마치게 했다. 그러나 부모는 이혼했고, 딸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삶을 리드해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 2013년 대학상담센터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95%는 학생들이 심각한 심리적 문제들을 보이고 있어, 대학 당국에서 갑자기 부상되는 긴급한 쟁점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70%는 갈수록 심리적 문제를 보이고 있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어, 24.5 % 정도의 대학생들이 심리적 안정을 위해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같은 해, 미국대학건강협회는 미 전역 153개 대학, 10만명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경험했는지를 물었다:
△84.3%: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60.5%: 매우 슬프다. △57.0%: 매우 외롭다고 느낀다. △51.3%: 불안에 빠져서 너무 힘들다. △8.0%: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동 설문은 미 50개 주내 대학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결과이기에, 대학생들의 정신 건강 위기는 단지 아이비리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대학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바로 대학에 진학한 자녀들의 정신 건강이 이처럼 침해받고 있는 것은, 부모들이 너무 아이들을 학구적인 측면으로만 몰아 부친 과도한 교육열(?)에 있다고 분석된다. 그리고 최근 들어 많은 통계나 연구들이 부모의 과잉교육열기 즉 헬리콥터식 양육의 위험성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미 전역에서 300명의 대학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 2010년 연구(Psychology professor Neil Montgomery of Keene State College in New Hampshire)에 의하면, 부모의 통제를 받다가 갑자기 그러한 간섭과 통제가 사라지자, 소위 “자유로운 늑대”가 된 신입생들의 순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1년 연구(by Terri LeMoyne and Tom Buchanan at the University of Tennessee at Chattanooga) 역시 300명을 대상으로,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라난 대학생들이 너무 쉽게 좌절이나 우울증세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헬리콥터식 교육은 미국 십대들을 온전하게 걷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고칠 방법은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들 스스로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이고, 부모들은 자신들의 욕심이나 바람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는 동기를 조정하는 것이, 바로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의 건전한 정신 건강을 위한 길이다.
그러나 헬리콥더 부모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단어가 너무 많다고 항의하는 부모도 있고, 아이의 자리 배치에 불만을 품고 교사에게 전화하는 부모도 있다. 매점에서 판매하는 소시지 빵 안에 샐러드 한 장이 빠졌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성적 채점에 불만을 품고 교장에게 메일을 보내는 부모, 교사가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압수한 것이 갈취라고 교장실에 전화하는 부모, 말썽꾸러기 아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교사를 탓하는 부모, 전자파가 걱정된다며 사전 협의도 없이 학교에 전기 기술자를 보낸 아버지도 있다. 이러한 부모는 대부분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 자녀의 성공을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녀 양육은 자신에게 주어진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성적 향상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헬리콥터 부모들은 돌 무렵부터 아이들에게 영어, 요가, 수영 등을 가르치고 값비싼 사립 영어유치원에 보내기도 한다.
2012년 438명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the Journal of Adolescence)를 보면, “헬리콥터 부모들의 강압적인 양육은 성년으로 가는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는 발달을 보여, 자력적인 장년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기술들이나 책임감들을 저해한다”고 나와 있다. 또 2013년 297명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구에도, 헬리콥터 부모에 의해서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심각한 수준의 우울 등과 낮은 자존감으로 빠져 자율성과 역할 분담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보고됐다.
한마디로, 과도하거나 지나친 자녀 양육은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의 복리에 영향을 줘, 항상 부모에게 상의해야할지 아니면 독립적인 인격체로 결정을 해야 할 지, 균형을 맞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을 깨우고, 학교로 바래다주며, 언제까지 숙제를 내야하고 어떠한 수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생활비를 내주고, 결정을 해주고,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책임을 지고, 학교 행정 당국과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을 갖게 되면, 자녀들은 당연히 방황하게 된다. 부모와 떨어진 다 큰 어른이 제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밖에서 볼 때는 멀쩡하고 완벽한 과잉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대학에서 다양한 상황들을 직면했을 때,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청결”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급생과 룸메이트가 돼야 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다고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학기말 리포트를 다시 써오라고 하는 교수를 만나고, 여름방학을 맞아 섬머스쿨을 수강해야 할지 아니면 커뮤니티 봉사를 나가야 할지, 대처를 못하게 된다.
결국 이런 양육은 최선이 아니다.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고, 자립심이나 사회성도 결여될 가능성이 높다. 또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겁도 많아 결국 사회에 나가면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고 부모에게 지속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자녀 교육에 조바심을 내는 부모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알아야 한다. 즉 교육은 경제 개발처럼 계획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부모의 직관과 유머, 여유가 바탕이 돼야 한다. 아이들이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지 말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친구나 파트너 관계가 아닌 어느 정도 권위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놀아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결론으로 부모들은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자식 주변을 맴돌며 온갖 잔소리와 개입을 일삼는 "헬리콥터 부모"는 아닌지, 지나친 염려를 기반으로 자식 앞에 생기는 장애물도 미리 치워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잔디깎기 부모"는 아닌지. 헬리콥터 부모나 잔디깎기 부모나 모두 자식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성장 과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부모들은 나름 그것이 자신이 자식을 생각하고 아끼는 것이라 주장하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자식 앞에 침묵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으로 핸드폰의 급격한 보급과 더불어 부모가 학생의 일상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학사과정에까지 개입하는 부모들 때문에 생겨났다. 헬리콥터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자식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하고, 스스로 시간 관리를 하며, 나름의 독립된 공간을 갖도록 해주고, 자식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지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그냥 두라는 조언도 있다. 이제는 잔디깎기 부모(lawn mower parent)까지 등장하고 있다. 헬리콥터 부모도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부모를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잔디와 잡초가 커서 아이들이 넘어질 것을 염려해 미리 잔디를 깔끔하게 깎아버리면 편안함, 안전함의 시각에서 부모 당사자는 나름의 위안이 있겠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평생 잔디 깎기 부모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나중에 터질 폭탄을 키우고 대처능력은 키우지 않는 무방비 상태의 위험성을 오히려 키우는 것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이 당장 힘들더라도, 문제들을 해결하고 실패하면서 무릎이 까이더라도 문제의 중심에서 위기를 맛보면서 커나가는 것이 헬리콥터식 양육을 극복하는 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