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도 모르고 한 착한 일

이성자 기자의 바이블 에세이

알프스의 빙벽을 기어오르고 있던 한 등반가가 자기의 발을 버틸 수 있는 얼음을 열심히 쪼아내고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한 나머지 두려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작업을 중단하고 천애의 절벽 밑을 바라보았을 때는 그만 무서운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한다. 

풍랑이 일던 갈릴리 바다의 파도를 밟고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주님만을 바라보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바람을 보는 순간 베드로는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사람이 어떻게 바람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이 바람을 본다는 것은 허상을 보는 것이요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상념에 사로잡혀 주위의 환경에 눈을 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상무념(無想無念)’, 이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로지 일에만 열중하고, 오직 기도에만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 깊이 빠져들며, 순수하게 주님의 일에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염려나 두려움이나 근심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선행 속에서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마 25:37-39).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자기 자신마저도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행한 아주 작은 일이 주님께 알려졌으니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자기를 들어내고 하는 선행은 오히려 도덕적 향락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바람을 보듯이 세상을 보고, 바람을 잡듯이 세상의 인기에 편승하는 행위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며 결국 자기를 침몰시킬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고 일에 몰두할 때 일의 보람을 맛볼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고 선을 행할 때 큰 덕을 쌓을 수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고 이웃에게 봉사할 때 향기로우며 상상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이게 된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고  헌신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된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을 입혔나이까 

어느 때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마 25:37-39)  

sjkcdc@hanmail.net 

06.0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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