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를 보내고 맞으며…

송찬우 목사의 조각 글

2023년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어 내고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걸며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목회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참으로 많이 있었습니다. 아니, 맡겨주신 사역을 내려놓은 지금에도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보낸 3만 6천 시간, '후배님들, 잘 버티세요.'"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39년간의 비행생활을 끝내고 올해 초 정년퇴임한 수석 사무장급 최고령 박경진 승무원의 기사를 읽으면서 또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 박경진 승무원은 21살에 대한항공에 들어가 비행기를 타기 시작해서 39년 동안 지구를 745바퀴, 3만 5800시간을 비행하고 만 60세에 퇴임했답니다.

그렇게 퇴임한 그 분에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학원을 해봐라, 대학에서 강의를 해봐라" 는 등,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그 분은 그런 제안이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저는 평소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나선다'는 건 나를 내보인다는 걸 의미해요. 이름 석 자를 보이면서 빛내려고 하는 거예요. 난 내 이름을 빛내기 위한 건 안 하고 싶어요. 승무원은 손님들 앞에 나서기는 하지만 나를 내보이는 직업은 아니에요.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손님을 존중하고 기내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게 내 임무예요. 객실 내의 안전에 대해선 거의 박사죠. 하나하나 생소한 게 다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그건 나를 내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

저는 누구를 탓하고 비방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면서 목회사역에 몸담아 오다가 사역을 내려놓은 지 이제 6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데 그런 제 모습이 이 분의 이 글 앞에서 왜 이리도 부끄럽고 초라하게 다가오는지...

영어로 목사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가운데 "미니스터(minister)"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굳이 의미를 이야기 한다면 "섬기는 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데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고, 대접을 받으려 하고, 존경을 받으려 하고, 잘난 이름 석 자 알리려고 힘을 기울일 때가 없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제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위로로 다가오십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아멘.

지나간 한해를 또 한 페이지 추억으로 접어놓으며 다짐해 봅니다. “새해엔 좀 더 후회 없는,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보리라”….. 

01.0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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