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넷 키프케모이라는 선수가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다리에 문제가 생겨 더 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킨넷은 기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몸을 뒹굴리며 몇 미터를 기어갔다.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여러 선수들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결승점을 향해 지나쳐 달려가는데 한 선수가 킨넷에게 다가가 부축해 안고 끌다시피 결승점을 향해 갔고 마침내 결승라인을 통과했다. 이 선수는 바로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이 마라톤대회에서 1등한 경력도 있고, 지난 해에는 2등 입상한 사이먼 체프로토라는 선수였다.
기자가 사이먼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사이먼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걷고 있다가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면 그냥 놔두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모든 삶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단결과 우정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날 무렵이면 자주 불리는 노래가 있다.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세상을 살다가 마음의 먹먹함이 내 삶을 짓누를 때, 인생의 허무함이 내 삶을 짓누를 때...... 그제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라는 가사로 불려지는 ‘세상을 사는 지혜’라는 제목의 찬양이다. 정말, 하늘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살다가 연말을 맞으면 마음의 먹먹함이 지긋이 눌려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세월이 살같이 지나간다.
코비드-19 후유증 중의 하나가 후각을 잃어버리는 것이어서 이 바이러스 침투를 받았던 사람 중에는 오랫동안 후각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시각, 청각도 그렇지만 특히 후각을 잃게 되면 식욕(食欲)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세익스피어는 “인간은 오감(五感)과 지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타 종교도 그렇듯, 기독교신앙도, 오감을 통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개신교 신앙은 외향적으로는 활발해 보이지만 깊이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는 것 같다.
소리공양(供養)이라고 할 정도로 산사의 풍경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는 청각과 그윽한 차향(茶香)을 비롯해 흙마당을 거니는 발바닥 촉감같은 오감을 대하는 불교라든가, 분향단의 향이나 물을 뿌리는 축성수, 시각을 사로잡는 보다 강렬한 십자가의 형체를 가진 천주교에 비해 통성기도와 뜨거운 찬양과 웅변처럼 외쳐지는 설교라는 형식들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예배 속에서 못내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세상을 사는 지혜’라는 노랫말이 무시당할 정도로 바쁜 교회일정이 아닌가 여겨진다.
오래전 시골 초등학교 학예회 현장처럼 시끌벅적한 성탄절의 소그룹별(목장, 구역, 셀 등) 발표회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따라하느라 아기예수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삶을 성찰해보기에는 무언가에 오염된 오감의 시대만 같아 씁쓸하다.
헨리 나우엔도 존경했던 화가이면서 영성 지도자였던 빈센트 반 고흐는 보르나주 탄광촌에서 사역할 때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인생의 본분은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쓰면서, 그 핍절한 현장에서 광부와 극도로 가난한 주민들에게 따뜻한 커피로 성찬식을 했다고 한다.
성탄과 송년은, 우리에게 묵상을 원하는 계절이다. 고흐의 그림에서 그의 목소리에 담긴 영성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친밀함과 동정심과 위로의 마음으로 약한 사람을 감싸 안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세상을 사는 지혜’의 가사를 묵상하며 오신 예수의 말구유를 찾아가는 절기가 되기 바란다. 마라토너 사이먼 체프로토는 마라톤의 결승점 앞에서 행동으로 이 지혜로운 묵상의 삶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djlee7777@gmail.com
12.1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