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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겹줄 동역이 필요한 한인 선교사회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금년 8월 9일 밤에 한 사건이 발생했다. K국에서 모 선교사와 그 장모님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된 것이다. 벌써 1달째가 되었건만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 그분들의 친가족과 파송교회는 얼마나 애가 탈까? 현재 두 분의 생환을 위해 여러분들이 중보하고 있다. 이처럼 선교사는 영적 최전선에 있기에 사탄의 공격을 받기 일쑤다”(벧전 5:8). 선교는 실시간 전개되는 진행형이다. 그에 따른 문제들도 동시적이다. 위기는 예측하기 힘들며 돌발적으로 엄습해온다. 이때 누가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곁에 있는 동료 선교사들이다. 선교사는 거리적으로 가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은 것이다. 헌데 지금 사역현장에서 선교사들끼리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다. 좋은 사례도 있지만 대체로 한인 선교사회에는 갈등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동역은커녕 오히려 곁에 있는 선교사가 사역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한인 세계선교는 터덕거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교단과 파송 단체를 초월해 선교사들끼리 삼 겹줄 연합을 이룰 수 있을까?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인 갓난아기

 

탈무드에는 “머리는 둘, 몸은 하나”인 갓난아기 이야기가 나온다. 저들의 관습은 생후 1개월째 회당에서 아기를 축복해주는 의식이 있다. 이때 축복을 두 번 해야 하는가, 한 번만 해도 되는가? 답은 이렇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본다. 당연히 해당된 머리 쪽에서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 동시에 다른 쪽 머리도 고통스러워하면  한 사람이요,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으로 보라는 것이다. 현재 유태인 수는 세계 인구의 0.2%인 약 1,570만 명이다. 이들 중 720만 명이 이스라엘 땅에 있고 미국에 570만 명이 있다. 이밖에 280만 명은 132개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Wikipedia 자료). 이 비유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유태 민족은 지난 2천 년간 타 민족과 국가로부터 무지막지한 핍박과 박해를 받아왔다. 이로서 유태인들은 저들 나름의 동질성과 연대감을 중요시 해 왔다. 만일 팔레스타인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 그 곳 유태인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면 당연히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도 동족으로서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혈통적 유태인이라 할지라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몸체 된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들은 유태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연합의 가치와 방해원인

 

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이라. 이 문구는 중국의 역경(易經) 또는 주역(周易)이라 일컫는 책에 쓰여 있다. 뜻인즉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를 수 있고,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은 그 냄새가 난초같이 향기롭다.”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한 후 전투현장에서 나타났다. 저들은 한날한시에 같이 죽기로 맹세하고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그 용맹과 우정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이처럼 연합, 동역, 협력의 중요성과 시너지 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동역을 잘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답을 중화권 선교의 대부 격이신 고(故) 토마스 왕( 王永信 )목사가 명쾌하게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주도권 쟁탈전 때문이란다. 그는 “누가 우리 교단의 중심인가 (Who is central in our denomination)? 누가 우리 선교사회에서 중심인가 (Who is  central in our  missionary community)?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와 교단이 헤게모니(Hegemony) 때문에 수없이 싸우며 분열되었다. 이는 사탄의 까불림에 놀아난 것이다.” 라고 질타했다.

 

개미들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

 

이 지구상에는 약 12,000~14,000 여 종의 개미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미는 크게 일개미와 병정개미, 수개미와 여왕개미로 분류할 수 있다. 일개미는 알이나 애벌레나 번데기를 돌보는 일을 한다. 병정개미는 몸집이 큰 개미로 적을 방어하거나 먹이를 잘게 부수는 일을 한다. 수개미는 여왕개미와 함께 하늘로 비행하여 하늘에서 여왕개미와 교미하여 여왕개미로 하여금 종족을 번식하게 한 후 죽는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고 애벌레를 돌보며 일개미를 번식시켜주는 일을 한다(참고: https://namu.wiki). 성경은 우리 인간이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명(잠 6:6-11)한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개미를 얼른 생각하면 “일과 부지런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는 종종 공원이나 빈 뜨락에서 개미떼들이 일열 종대로 가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개미는 땅속이나 돌, 나무 밑, 나무 안, 빈 줄기, 심지어 도토리 속에 집을 짓는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미들의 성과물이 아니라 일 방식이다. 개미들의 근면함은 “개미와 베짱이” 라는 우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개미는 맡은 소임에 끝까지 책임을 진다. 결코 다른 개미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나아가 개미는 팀워크로 연합을 이룬다. 람보처럼 힘센 자가 전체를 휘두르지 않는다. 개미 사회는 철저히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되어 있다. 하찮은 미물이라고 우리가 우습게보아서는 아니 된다.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 

가까이 있는 선교사는 경쟁자가 아니라 최고의 동역자이다.

선교사들끼리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세계선교는 소망이 없다.

 

한인 선교사회의 동역 방안

 

하나님께서는 3차원의 구도 가운데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인간-만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관리해야 할 청지기적 직분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만물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제사장적 직분이 있다. 이로써 우리 인간들은 더욱 겸허하게 특별계시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간파하고 또한 대자연 속에 운행하는 일반계시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특권에 따른 책임성이 크다. 불행하게도 인류사회는 시초부터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죄와 사망의 덫에 걸려 있다. 따라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하여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도록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선교사는 첫째 나의 킹덤(Kingdom)이 아니라 하나님의 킹덤을 앞세워야 한다. 자기명예나 욕심이 앞서는 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멈추게 된다. 둘째 옆의 선교사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라는 연대의식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옆의 전우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주변의 선교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셋째 소속한 단체나 선교현장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겠다는 생각과 행동을 버려야 한다. 이는 모든 분란의 씨앗이다. 영적 공동체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넷째 통합적 프로젝트를 세우고 각자 은사와 준비됨을 따라 동역해야 한다. 선교지에서 100개의 텐트보다 랜드 마크(Landmark )격인 100층짜리 빌딩 하나가 더 빛을 발한다.

 

맺음 말

 

선교사는 3각 관계 속에 있다. 후원자나 후원교회, 피선교지의 현지인, 동료 및 선후배 선교사들이다. 이중 선교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현지인이 아니다. 종교 탄압하는 정부 요원도 아니다. 바로 가까이 있는 동료 선교사들이다. 우리는 위에서 살펴보았다. 탈무드에 “몸이 하나에 머리가 둘인 아기” 비유를 통행 공동체의 동질성과 유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역경(易經)에서는 “두 사람이 마음이 같으면 그 강함이 무쇠를 자를 수 있고 그 말의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했다. 하나의 미물인 개미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의 결과보다 자기 책임을 다하며 동역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선교사회도 이제는 업적지향보다 과정 속에서 연합적 사역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개미의 집이 큰들 사람보기에는 하찮은 것이다. 인간의 업적도 하나님 앞에서는 크게 자랑거리가 못 된다. 세계에 나가 있는 한인 선교사들은 현재 174개국에 약 23,000명이 있다. 저들은 사방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기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기 쉽다. 누가 선교사를 가장 많이 잘 도울 수 있는가? 바로 곁에 있는 다른 선교사들이다. 지금 이순간도 어둠의 세력에 포로가 되어 떨고 있는 K국 모 선교사와 그 장모님이 생각난다. 이게 남의 일인가?  2만3천여 명의 선교사들이 마음을 합치면 하늘이 진동할 것이다.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의 100보 보다 100사람의 1보가 낳다. 앞으로 한인 선교사회에 삼 겹줄 동역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Jrsong007@hanmail.net

 

09.1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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