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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학생 선교단체의 상관관계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1세기 교회들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차세대를 이끌어야 할 헌신 된 청년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를 책임질 일꾼들을 잘 배양 할 수 있을까? 그 방편 중 하나는 모달리티(Modality)인 지역교회와 소달리티(Sodality)인 학생 선교단체가 유기적인 소통 가운데 연합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20세기 후반부터 한국교회 가운데 두 구조 속의 리더십은 서로 반목하였다. 인정, 연합, 도움, 상생하기보다 비판, 긴장, 갈등, 경쟁을 한 부분이 많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교회와 학생 선교기관 간의 이해도가 넓어졌다. 좋은 동역의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몇몇 단체들은 교회론에 있어 폐쇄적이며 지역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 중에서도 대학선교 기관들을 곱지않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과연 두 구조의 기능은 무엇이며 상생은 가능한가? 이에 우리는 현실적인 이해타산이나 막연한 편견보다는 선교 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의 차이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해 모달리티(Modality)와 소달리티(Sodality)라는 두 개의 조직체가 있어 왔다. 일반적으로 모달리티는 지연이나 혈연으로 구성된 자연적인 조직을 말한다. 이에 회원들에 대한 자격조건은 크지 않다. 이 조직은 사람 중심의 관계 지향적이다. 대체로 다양성, 자율성, 존재를 강조, 안정 지향, 생물학적인 성장, 낮은 헌신 등이다. 이를테면 유대인의 회당이나 교회 같은 조직체를 말한다. 모달리티 지도자형은 통제와 보수, 조화와 일치를 우선으로 한다. 소달리티는 인위적 요소가 강하다. 주로 어떤 특정한 과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결성된 단체로서 목표 지향적이다. 여기의 특징은 단일성, 과업 지향, 일을 강조, 2차 결단에 의한 성장, 높은 헌신 등이다. 정치적 파당이나 서클, 학생 선교단체가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회원들에 대한 특수한 자격조건이 요구된다. 소달리티 지도자형은 역동성, 창의성, 비전과 도전 등이다. 

선교단체의 뿌리

 

모달리티로서 교회와 소달리티로서 학생 선교단체의 관계는 이해도에 따라 그 무게중심이 다르다. 일반적인 관점은 선교단체를 가리켜 “교회의 병행단체(Para-Church Organizations)”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루덤(Grudem, W.A.)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는 마치 선교단체가 교회와 병행(Beside)하므로 교회 밖에 있는(Outside of) 것이어서 서로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영국교계에서는 선교단체가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에서 “전도의 팔 (Evangelistic Arms)” 노릇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 표현은 신학적 논쟁을 거쳐 영국 학원선교 연합단체인 UCCF문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교회중심으로 치우쳐 있다. 대학 선교단체는 결코 캠퍼스 사역을 위한 지역교회의 부속 기관이 아니다. 이는 엄연히 독립된 구조이면서도 교회와 연합되어 있다. 교회와 선교단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몸 된 영적 조직체이다. 교회는 모달리티로서 하나님의 인류 구속을 성취해가는 중심기관이요 원줄기임에 틀림없다. 이에 반해 선교단체는 교회의 위임을 받아 특별한 목적수행을 위해 파생된 기관이다. 그 차이는 신학과 신앙에 있지 않고 단지 기능과 역할이 다를 뿐이다.

 

Sodality와 Modality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교회와 선교단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된 영적 기관이다. 

두 구조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며 연합할 때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두 구조의 상호 연관성

 

역사적으로 모달리티는 소달리티를 없애 버리는 경향이고, 소달리티는 점차 그 구조나 성향에 있어서 모달리티처럼 되려는 관성이 있다. 중력이 전통교회에 있다는 말이다. 랄프 윈터(Ralph D. Winter)는 두 구조의 기능이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개신교도들 간에는 이에 대한 적법성 및 적절한 관계에 대해 심각한 혼란이 계속되어 왔다고 평가한다. 그는 해석하기를 모달리티로서 교회조직은 매우 중대하고도 본질적인 구조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달리티” 구조 외에 “소달리티” 라는 또 다른 구조를 통해 일하셨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 두 구조가 모두 정당한 것이며 대 위임령을 이루기 위해 서로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처럼 대등한 관계로 서로 공존하며 유기적 협력이 일어나야 한다고 여긴다. 

 

대립된 두 구조 속의 역사

 

한국교회는 1960-80년대에 걸쳐 급성장하였다. 이때에 대학선교를 하는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두 구조 속의 지도자들은 보이지 않게 갈등하며 서로 비판해 왔다. 선교단체들을 제자훈련이란 기치 아래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며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다. 그들은 당시 지역교회가 눈을 뜨지 못한 대학복음화를 위해 나름대로 공헌을 했다. 이에 반해 교회들은 주로 부흥회를 일상화하며 교회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문제는 학생들이 양 구조 속에 발을 딛고 왕래하므로 발생했다. 속된 말로 사람 뺏기 경쟁이었다. 단체 간사들은 대학생들을 제자양육 차원에서 강한 훈련을 시켰고 많은 헌신을 요구했다. 반면에 목회자들은 자기 교회 청년이 주일 날 몸만 와 있고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로써 두 구조의 담당 사역자 간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 가장 어려움을 당한 자는 당사자인 학생이었다. 다행히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의식있는 사역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선한 방향으로 노력을 시도해 왔다.

 

건설적 대안 

 

이제 교회와 학생 선교단체는 “대학선교”라는 넓은 관점에서 서로 존중하며 긴밀한 유대 속에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교단체 사역자들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지역교회를 섬기는 차원에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나아가 선교단체는 교회에 부담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학복협과 코스타 대표를 역임했던 이승장 목사는 “그 방편으로 지역교회가 하는 사역을 선교단체가 백화점식으로 다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선교회는 지역교회가 할 수 없는 더욱 전문적이고 특수한 사역을 창조적으로 개발하며 진화해 가야 한다. 참고로 선교한국이나 어바나 선교대회 같은 연합운동이나 선교학교, 기도훈련 세미나, 한시적 양육 프로그램 등 많은 사역을 얼마든지 고안해 낼 수 있다. 한편 교회는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 청년들을 전문적으로 훈련을 시킬만한 전문성이나 여력이 없다. 실제 교회에 온 대다수 대학생들은 훈련보다 교회 봉사하기에 급급하다. 한참 배우고 연단 받아야 할 때 성장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는 회복할 수 없다. 이는 그들 당사자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도 손해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순간 얻지만, 일꾼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이에 교회는 거시적 관점에서 저들이 차세대를 이끌 재목이 되도록 안배해야 한다. 그 방안은 지역교회가 청년들의 양육훈련을 감당할 수 없을 때 학생 선교단체에 위탁하는 것이다.

 

맺음 말   

 

Modality로서 지역교회와 Sodality로서 학생 선교단체는 지상과업을 이루기 위한 연합체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기능이 십분 발휘되도록 부축하며 함께 가야 한다. 교회 배경이 없는 선교단체들을 힘을 쓸 수가 없다. 반대로 선교단체의 역할을 배격하고 Modality적 교회가 Sodality적 기능까지 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이다. 이제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세속적 논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소아병적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연합된 대오를 펼칠 때가 되었다. 그 핵심은 차세대 일꾼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 청년들이 교회에 뿌리를 두고 전문단체에서 훈련받도록 피차 배려함이 윈윈(Win-Win)의 방편이다. “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 

Jrsong007@hanmail.net

 

08.3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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