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예수가 유일자라면 바울은 제1자이다.” 이 말은 신학계에서 종종 회자(膾炙)되곤 한다. 즉,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유일한 분이시라면 바울은 사람들 중 넘버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바울은 예수 다음으로 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성경학자인 마이어(F.B. Meyer)는 “소아시아에서 빌립보까지 사도바울을 태운 배는 온 유럽을 싣는 것보다 무거웠다.”라고 칭송했을까? 아무튼 바울의 선교적 업적과 그 위대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의 선교원리를 사역에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선교 지역
최초이자 최고의 선교사였던 바울은 주로 문화가 높은 거점 도시에서 선교를 했다. 그중에서도 바울은 소아시아의 수도였던 에베소와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를 중시했다. 그는 왜 낮은 문화권 방향이 아닌 역문화적 노선으로 동선했는가? PAX ROMANA. 즉,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그 곳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모든 정보가 취합되었고 여러 족속들이 왕래하는 곳이었다. 이로서 그는 심장에서 박동된 피가 온 몸으로 퍼지듯 세계의 수도인 로마를 택함으로서 지구촌을 한 손에 움켜쥐게 된 것이다. 만일 그가 감상적인 선교시각에서 아프리카 오지나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로 갔다면 기독교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아가 바울의 선교지 선택은 들불작전을 연상케 한다. 그는 1,2,3차 전도여행에서 보듯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넓은 들판의 잡목을 속히 태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곳으로부터 점진적인 발화가 아니라 동서남북 여기저기에 불꽃을 점화하는 것이다. 바울은 안디옥을 출발해 아시아와 마케도니아를 거쳐 이탈리아로 나아갔다. 그는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지중해를 끼고 있는 열방에 복음의 들불을 놓은 것이다. 참으로 탁월한 혜안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교지역을 선택할 때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면 안 된다.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강구해야 한다.
선교 내용
바울의 선교 사역은 제자양육이 핵심이었다. 그가 살았던 때의 역사적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그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의료, 교육환경, 경제적 피폐뿐만 아니라 노예제도 등 제반 사회적 문제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시대적 쟁점 앞에 그는 많은 사역적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다혈질적인 그였기에 열혈당원처럼 유대국가 독립이나 사회정의를 위해 투사로서 몸을 불살을 수도 있었다. 고아원이나 병원을 지어 긍휼사역을 할 수도 있었다. 선교센터나 큰 회당을 짓기 위해 올인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상황적 요구보다 철저하게 영혼구원과 일꾼양성이라는 단일궤적 안에 사역을 국한시켰다. 그는 영 안으로 세상을 조망했고 하나님 나라 일꾼 양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다. 바울의 중심 사역은 예수의 12제자 훈련처럼 대중 보다는 소수의 사람을 뽑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일꾼으로 키우는 일이었다(골 1:28-29). 바울은 동반자를 위해 선생의 역할 뿐만 아니라 영적 아비가 되어 주었다(갈 4:19; 딤전 1:2; 고전 4:15). 제자훈련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육자가 동반자를 위해 믿음 안에서 책임 있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될 때라야 참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사역은 끝없는 인내와 아픔을 수반한다. 고로 진정한 멘토(Mentor)는 스승이요, 부모요, 친구라는 3각 구도로 사람을 돕는 자이다. 영적 아들로 디모데를 입양한 바울이 그러했다. 한인 세계 선교! 우리는 정말 프로젝트나 선교 센터, 교회 건물 들보다 영혼구원과 제자양육에 집중하고 있는가?
선교 재정
바울은 Tent Maker로서 자립을 하면서 전도여행을 하였다. 그는 소아시아 7교회를 개척할 때도 물질적으로 도왔다는 구절이 없다. 그는 오히려 재정적 도움을 받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급(Self-support) 생활을 하였다. 익히 아는 바 물질은 잘못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 현지인의 눈을 어둡게 한다. 특히 일반 회사처럼 계약에 따라 사례비를 주고 일하게 하는 경우는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재물로 인한 주종 관계적 리더십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성을 훼파하는 죄악이다. 물론 열악한 현지 사정을 고려해 한시적 지원은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믿음과 사랑이 선행되어야 하며 조건적이지 않아야 한다. 진정 선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피선교지 민들이 선교의 주체인 성령의 통치 아래서 자립적 신앙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렇지 않을 때 현지인은 성장하지 못하며 종속적이게 된다. 나아가 선교의 재생산이나 부흥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선교사가 불의의 사건 사고로 유고시가 될 경우 선교사역은 닫혀질 수도 있다. 밀물이 백사장의 모래성을 지우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사도 바울의 본을 받아 피선교지민에게 자립정신을 고취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AI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선교환경은 안, 밖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 제시된 사역 원리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선교 방법
바울은 팀 사역을 하였다. 그는 안디옥 교회의 지지 속에 바나바와 함께 선교를 출발했다. 1차 전도여행 후 자기를 오해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협력을 구했다. 그리고 그가 개척한 교회들과 기도와 서신 그리고 재방문 등으로 팀워크를 이루었다. 세상의 전쟁도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로서 팀 작전을 해야 승리할 수 있다. 영적 전쟁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것은 시작부터 시 공간을 뛰어 넘어왔다. 더욱이 현대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국가 개념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실시간 세계의 뉴스를 접하고 있으며 하루 안에 지구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에서 한 유학생을 전도하면 그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10 사람이 자기 본국에 있다. 따라서 선교지의 개념도 이제는 지역에서 사람중심으로 빠른 인식전환이 되어야 한다. 지구촌이 하나의 글로벌 한 선교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지역과 국가를 초월하여 연합적인 팀 사역이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백 보 보다 백 사람의 한 보가 낫다.
선교 위임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말씀으로 주의 제자들을 양육하며 그들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다. 나아가 그는 때가 되면 과감히 위임해주고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나아갔다. 그 단계는 4P 이론인 개척(Pioneer), 양육(Parent), 협력(Partner), 참가(Participant)이다. 선교사역을 하다 보면 자칫 한 곳에 마르고 닳도록 정착하여 자기 왕국을 만들기 쉽다. 피선교지민들을 독립적 지도자로 세우기보다 종신토록 자기를 의존하며 돕는 역할만을 감당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대사이다. 그러므로 사역지에서 인간적인 욕심이나 야망은 금물이다. 시작부터 주님의 킹덤을 생각하며 출구전략 가운데 사역에 임해야 한다. 그 방편 중 하나는 때가 되면 선교사는 과감히 사역을 위임하고 떠나주는 것이다. 그렇지않는 한 현지 사역자는 성장할 수가 없다.
맺는 말
바울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첫째로 각 나라와 족속의 요충지를 갔다. 둘째로 오직 창조적 소수를 택해 제자양육에 집중했다. 셋째로 재정적으로 자립정신을 고양시켰다. 넷째로 철저히 팀 선교를 하였다. 다섯째로 사역을 과감히 위임했다. 결국 그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복음은 유대 공동체의 사상과 틀을 깨고 소아시아와 지중해를 거쳐 열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지각변동이 도래하고 있는 이 때에 더욱 바울의 선교 노선을 잘 이해하고 사역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어려울수록 근본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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