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여기에 소개되는 성품은 곧 주님의 성품을 말해줍니다. 오스왈드 쳄버스는 그의 저서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상관없는 경건의 모양이나 경험은 다 거짓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필자는 사별 후에 홀로 있는 5년 동안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예수를 오래 믿고 열심히 기도를 하면 이렇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나 보다”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홀로 서기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들기는 해도 성화를 이루는 데는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5년 후에 재혼을 하였습니다. 일찍이 사모사역을 위한 비전을 갖고 시작한 목회이었기에 사모의 행복을 최대한으로 누리던 사역이 남편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다시 태어나도 사모가 되고 싶어요”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사모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목사와 결혼을 하여야만 된다고 생각하였기에 계속해서 재혼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그러나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혼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 내가 과부가 되었기로서니 무엇이 그렇게도 억울할까 생각하며 다시금 주님께 재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신 아버지 이제 홀로 살 수 있는 체질로 바꾸어 주셔야 남은 사명 감당할 수 있습니다. 23년 동안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사역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몸이기에 이제는 새로 빚어주셔야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곡히 부르짖는 절규를 들으신 하나님은 7개월 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고 나타났다고 하는 목사님의 말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응답을 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힘들게 재헌신하며 혼자 살기로 다짐한지 일 년도 채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무엇입니까? 헷갈려서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고민하다가 결정하고 새 결단을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와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요?” 주신 이도 하나님, 취하신 이도 하나님으로 고백하던 욥의 고백이 생각났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축복의 약속도 주셨습니다. 이삭이 모리아산 제단위에 올리웠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 줄 알았다” 마침내 이삭은 제단위에 묶여 있던 밧줄에서 풀려나 제단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5년간의 묶여있던 과부의 밧줄을 이제 풀어주신다고 하시었습니다. 이 응답을 받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억울함과 슬픔 황당함의 눈물과 함께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홀로 지내는 5년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오는 눈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눈물 닦아주시면서 하시는 말씀, “이제 너의 앞길에 이삭에게 주신 축복을 주리라 네가 가는 길에 막혀 있는 우물들이 터지는 축복을 주리라”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요? 과거에 입었던 옷을 어떻게 벗을 수 있을까요?” 고민하며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눅2:38 마리아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모든 염려와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확실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둘이는 서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사소한 일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데 남편도 놀라고 저도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오래 했는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으면 이런 것쯤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책하면서도 또 다시 서로 다른 부분 때문에 불편하다고 아우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낙심까지 되었습니다. 다시 알게 된 것은 5년 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결코 내가 거룩해져서가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자극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임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단하였습니다. “남편 앞에서 잘난 척할 필요가 없구나,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 하고는 용서를 빌었습니다.
처음에는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 한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무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익숙하지도 않은 말을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기도생활 및 종교 활동은 많이 해왔기에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남편에게 용서를 비는 말은 잘하지 않았던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고자세였고 교만하였던가를 처절하게 느끼는 순간. 바울의 고백인 ‘나는 날마다 죽노라’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이 고백과는 정반대로 ‘나는 날마다 사노라’였습니다.
특히 남편 앞에는 한 번도 지는 법이 없었고 오히려 남편을 핀잔하는 말을 열심히 하였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어떤 경우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용서를 비는 말을 듣지 않고는 다음 일을 하지 않는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눈을 딱 감고 입을 벌려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이 말에 남편의 응어리는 그냥 풀려나가며 오히려 우리 부부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로 잘하려고 애쓰며 긴장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며 받아주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값이 비싼 이유는 많이 깎이었기 때문입니다. 면이 많이 깎인 다이아몬드일수록 값이 더욱 비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부딪치고 또 부딪치는 동안 깎이고 또 깎이어서 이제는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모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이런 사모와 함께 사역하는 목회자는 행복합니다. 성도들도 행복하고 교회도 행복합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