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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모의 사명 가꾸기(2)

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명이란 오직 한 가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신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이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는데 요즘엔 너무 많아 마치 도매상의 상품보다 가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막상 교회마다 적임자를 구하려면 쉽지 않은 것이 목회자의 안타까움입니다. 그 이유는 진정한 사명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저자 ‘허준’이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현대 목회자들에게 좋은 자극과 도전을 주는 드라마입니다. 그는 어려운 서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한때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의 멘토가 되는 유의태를 만나 다시 의사생활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위기를 만나 어려움에 빠졌어도 오히려 기회를 삼아 일어나 마침내 어의가 되는 내용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때로는 가정을 뒤로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한때는 반항을 하기도 하였으나 자기 아버지의 진정한 충성을 보고 오히려 감동을 받게 되자 자신도 어의가 됩니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목회자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목회자들의 고민거리인 가정의 문제를 운운하다 보면 어느덧 가정을 우선하게 됩니다. 물론 가정을 소홀히 하여 사모들을 힘들게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올바른 자세는 어디까지나 부르신 이 앞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할 수 있도록 곁에 있는 사모들이 정중한 태도로 내조를 해야 할 것입니다.

허준에게는 실력을 인정받아 많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의 스승의 교훈을 기억하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들 어리석은 자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며 앞뒤가 꽉 막혀있는 자라고 주변 사람들이 매우 답답해 할 정도였습니다.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게 되었어도 그는 동의보감을 편찬하기 위해 명나라로 떠납니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그가 편찬한 책 ‘동의보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온 세계에 크나큰 유익을 주는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영예를 뒤로 해야 합니다. 수없이 싸고 들어오는 유혹들을 물리치도록 남편 목사님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엔 평신도들이 명설교를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클릭만 하면 듣고 싶은 설교를 다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멀리까지 애써 가지 않아도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크리스천의 문화형태는 성도들을 기형아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설교만 잘하면 성도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의 내용과 행동과 인격이 따라주어야 존경을 합니다. 조그마한 욕심덩어리라도 보일라치면 성도들은 잽싸게 알아차리고 교회를 떠나기까지 합니다. 더 이상은 그런 꼴을 보기 싫어서 컴에 앉아 차라리 명설교를 듣기도 하지요. 그런가하면 목회자들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자 이제는 조그마한 진실이 목회자에게 보여지기만 해도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위한 상급제도가 생겨나게도 되었습니다. 과거엔 이런 행동은 목회자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런 목회자를 찾기 어려워진 이유로 조그마한 덕망도 높이 평가하여 상급을 내려야 하는 시대가 된 셈이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믿음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실정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많으나 참 경건의 능력을 가진 자를 찾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다니엘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청년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문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곳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다니엘은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불의로부터 더럽히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마침내 친구들의 모함에 걸려 사자굴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때에도 다른 수단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똑 같이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참으로 현대 크리스천들이 신앙을 점검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모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로 사모들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역하던 도중 어떻게 변해 가는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목회에 쫒기는 것입니다. 시대 유행에 쫒기고, 문화에 쫒기고, 상식에 쫒기고, 변천되는 사회의 풍조에 휘말리게 되다 보면 정말 신앙의 힘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대세를 위해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용납해주다보면 정의는 힘을 잃게 됩니다.

다니엘은 어쩌면 고지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말도 되지도 않는 자세로 대흥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는 자세였습니다. 그의 앞에 사자굴이라는 확실한 죽음이 있었어도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자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에도 자신의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의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천사들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자들의 입은 드디어 봉해졌고 따뜻한 침대가 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밖에서는 다리오왕의 슬픈 소리가 들려왔고 다니엘을 죽이려 했던 이들의 쾌재가 울려왔으나 그것이 결코 다니엘을 두렵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자굴에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담대함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요 또 한 가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찔릴 것이 없이 무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다리오왕을 통해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은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단6:26).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현대판 다니엘을 찾고 계십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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