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목회자의 침실 가꾸기의 몫은 사모들에게 있습니다. 남편을 잘 보살피지 않는데서 오는 불상사들이 교회 안에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기 가장 쉬운 마귀가 바로 음란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은 여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의 여론을 조사해보면 기도와 철야하는 사모를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목회자의 호소를 들어 보면 ‘우리 아내는 제빌 기도를 좀 절제하면 좋겠어요. 허구 헌날 철야니 금식이니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제 옆에서 잠자는 아내를 보고 싶습니다’ 라고 호소해옵니다. 사모들은 이런 남편의 심정을 알까요? 모를까요? 좀 열성분자에 속한 사모들은 ‘목사가 왜 그렇게 성을 밝히시나, 설교준비하고 기도해야지 짐승처럼 매일 그런 것만 요구해오고 그러니 목회가 이 모양 이 꼴이지...’라고 나무라기라도 하면 소심한 목회자들은 의외로 움츠려들며 아내에게 접근도 못하다가 젊은 집사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조절할 수 없는 육정으로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마는 것이지요. 혹은 남편을 너무 믿어서 ‘아, 우리 그이는 그런데는 눈이 어두워 아무 염려 없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후 상담실 문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모들은 남편을 너무 믿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매일 형사처럼 보초를 서거나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졸졸 따라 다니거나 뒷조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단지 남편을 충실하게 즐겁게 해주는 여우가 되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목회자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면 교회 안에 모든 부부들이 닮게 됩니다.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목회자부부를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교회 안에는 음란마귀가 들어 왔다가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 도망가게 되지요. 사모가 지혜롭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연출을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여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수 있어 특별한 가정 세미나가 필요없게 되는 것이지요. 여우가 되라는 의미에는 반드시 기교나 테크닉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이에 따라 부부 각 사람의 체질에 따라 성에 관한 조건은 달라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성행위 자체에 관심이 가게 되며 동시에 회수나 오르가즘의 정도에 따라 행복과 즐거움이 비례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부부들의 사정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남녀의 건강상태 및 조건 신체 발달 모두에 따라 다양합니다. 어느 기준과 표준은 세워 놓고 학습과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성행위를 전혀 할 수도 없는 상황일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받아온 성교육에 문제가 있어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는 부부도 있는가 하면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성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여우가 되라는 의미는 이런 모든 상황 전반부에 걸쳐서 대응하는 실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용어로는 잠언 31장에 설명하는 현명한 아내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을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해 나가는 실력이 여성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어느 사모의 고백을 들어보십시다. “남편이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성기능이 떨어지고 의욕조차 없어서 고민입니다. 성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저는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강한 성충동으로 인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심할 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남편이 보기 싫어지면서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선교지의 열악한 조건과 환경이 저를 더 그렇게 만들고 있는데다가 성욕까지 채워지지 않는 저의 생활은 말이 아닙니다. 남편이 하는 일들이 모두 미워지고 참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부부세미나에 참석하여 개선해보자고 의의를 제기하면 남편은 펄펄 뛰면서 거절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으로 딱한 상황입니다. 무어라고 답변을 해줄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혼자서 안간힘을 쓰며 선교지에서 견디어 오는 사모가 불쌍해지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뚜렷한 방법이 없습니다. 당뇨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체적인 악조건은 심리적인 문제까지 커져가고 맙니다. 아내의 필요를 채울 수 없는 남편의 좌절감은 심한 폭행까지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성생활을 대신할 수 있는 문화행위가 이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성욕은 다른 욕구와 달라 채워지지 않는다고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욕망은 반드시 그 행위로만이 해결받을 수 있지만 성욕은 다른 행위로도 대신 채워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재치가 필요합니다. 예술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도 독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과 함께 즐기기 때문입니다. 문화생활 중에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은 신앙의 힘입니다.
영성생활로 대치할 때 보다 고상하고 차원 높은 부부의 성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기능도 성욕도 내리막길이 되어갈 때도 부부는 함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을 때 정신적 결합내지는 영적인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존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존경도는 실력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남편들이 나이가 들면서 은퇴하거나 퇴직을 하여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혹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 자녀들에게 얹혀살기라도 하게 되면 스스로 자격지심에 서글퍼지며 아내로부터 푸대접은 물론이지만 자녀나 손주들로부터 멸시를 받게 됩니다. 젊은 날 열심히 사랑할 수 있을 때 부부는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됨이란 사랑의 극치를 말해줍니다. 하나됨의 원리는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의 원리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 내 마음은 항상 배우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배우자에게 변화를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먼저 낮은 자리에서 배우자를 알아야 하고 나의 언어와 생각내지는 감정들을 그에게 맞추기 위해 내려가야 합니다.
부부끼리 서로 부드러운 마음으로 존경하고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뒤로 하고 맞추어 나갈 때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는 나이 들어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단어도 잊어버려서 자꾸 찾아 헤맬 때에도 상대방에게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필요를 알아차릴 수가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여보, 거시기 갖고 와요”라고 부탁을 하면 아내는 특별히 물어볼 필요 없이 남편의 소지품 중에 필요한 것을 잽싸게 갖다주면서 “여보 거시기 여기 있어요”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는 눈빛만 보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부의 생활은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 30년, 40년, 50년 되어갈 때 부부애는 보석같이 빛나 기능은 날로 떨어져가도 하나됨의 행복은 날로 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