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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모의 침실 가꾸기(3)

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행복한 목회를 위해서는 침실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작은 여우 새끼 한 마리가 우리의 침실을 더럽혔을 때는 그동안 쌓아온 행복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목회자부부의 침실이 어떤가를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강조하면 사모들은 대부분의 경우 절제와 금기를 상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침실에서 하는 부부의 성생활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연관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주님으로 상징이 되어야 하고 아내는 교회로 상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론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침실에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의아해합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부부들은 성생활자체를 성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정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더럽고 추한 것, 육신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므로 성행위 자체를 마치고 나면 기도가 안된다고 호소해오는 사모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한번 기억된 감정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은 감정을 사로잡는 힘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성관계가 건전하지 못할 경우 성폭행을 당한 상처, 혹은 부부사이라 해도 충분한 사랑의 언어 없이 일방적으로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당한 경우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 전 성지식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을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성의 경우 순결을 잃은 이후 결혼한 남편과의 성생활에서 감정을 충분히 즐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들이 부부의 침실을 성스럽게 하지 못하며 따라서 행복하고 즐거운 침실을 더럽히고 맙니다. 부부의 성이 성스럽기 위해서는 부부끼리 서로 감출 것이 없어야 합니다. 비밀스러운 것이 아직 남아있는 부부는 충분한 성을 즐기기가 어렵습니다. 크리스천의 침실은 거룩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된 고백과 함께 서로 용서가 사랑의 고백으로 흘러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침실에서 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하나되기 전에 먼저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 되는 순간이 침실에서의 예배 시에 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도와 감사로 서로 고백을 하는 순간 하나님의 하나됨의 축복이 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용서하되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듯 하고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께 순종한 것처럼 순종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침실의 자리입니다. 부부의 생활은 의무감에서 하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7:4).

이것이 부부성생활의 규칙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자기의 몸을 맘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에게는 거리가 너무 먼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생활이 행복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생활은 섬김의 도의 기본이 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고상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침실의 자리는 봉사의 자리입니다. 영어로 service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예배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부부끼리 침실에서의 봉사라는 단어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부부생활을 다룰 때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음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계속적인 사랑을 내려 보내주시는 관계, 이것이야말로 부부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은혜입니다. 이것이 침실에서 되어질 때 이들의 부부는 더욱 거룩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성욕을 채우는 성행위가 어떻게 거룩의 계열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부부의 성행위를 통해서 배우자를 배려하고 그를 즐겁게 하기 위해 하는 행위 모두는 거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실제적으로 난관에 부딪치게 하는 것은 부부들 주변에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경우 특히 목회하는데 방해요소들이 제법 생기곤 합니다. 새벽기도가 가장 관건입니다. 젊은 사역자들의 경우 남편이 주로 밤에 요구해올 때 아내는 하루 종일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어가면 빨리 자고 새벽기도에 참석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남편의 요구를 밀어내야 합니다. 그럴 때 남편은 매우 심한 상처를 받습니다. 남편들은 한번 거절감을 당하면 자존심이 순간적으로 무너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아내 또한 마음이 열려야 몸도 열리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아무 감동도 없이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몸으로 변신하고 맙니다. 여기에 무슨 봉사를 말하고 거룩을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지겨운 밤이 오는 것이 싫고 두렵기만 합니다”라고 하는 사모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런 부부들에게는 “성은 거룩한 것입니다”라는 이론은 책상에서만 외쳐지는 이론으로 끝나고 맙니다. 특히 이민 생활에 지친 사모들의 성은 우리의 생활에서 제일 뒷자리로 밀려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난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 어느덧 교회를 떠나야 하는 은퇴목사 사모가 되어 버립니다. 자녀들은 이미 품안을 다 떠나고 홀로 남는 빈 둥우리 시대가 되고 나면 과거에 그렇게 고생하던 사모의 추억은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들어줍니다. 어느 사모 세미나를 가보아도 성문제만큼은 해결되지 못한 채 가슴 속앓이로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해하기에는 몹시도 어려운듯하지만 바울은 부부생활을 다룰 때마다 기도와 연관시켰습니다. 고전 7장 5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성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아까운 청춘을 그냥 썩힐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값진 선물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헌신짝처럼 취급한다면 만들어주신 주인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숙을 위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성에 관심을 갖고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을 갖고 각자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의외로 성에 대한 문제는 기도의 제목에서 제외됩니다. 이것 또한 바람직한 기도생활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침실을 위해 반드시 기도제목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부부의 문제나 혹은 행복한 성행위를 방해하는 작은 여우새끼들을 내어 쫓아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기도는 해야 합니다. 성생활은 기도로 시작하여 찬양과 감사로 마무리를 할 때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의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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