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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모의 영성가꾸기 (3)

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람에게는 나이가 들면서 갖추어져야 할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끼, 깡, 꾀, 꿈, 꼴 이렇게 다섯 가지의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것들입니다 ‘끼’는 인간이 태어날 때 타고 나는 탤런트를 말합니다. 양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재주를 말합니다. ‘깡’은 보통 깡다구라고 말하는 것인데 한번 하기로 결심하면 무슨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내는 집념을 말합니다. ‘꾀‘는 지혜를 말합니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갖추었어도 지혜가 없으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꾀도 있지만 믿을만한 꾀는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꿈’ 비전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꿈이 있는 나라나 개인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꿈을 가진 자에게는 있습니다. ‘꼴’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과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모양새을 말합니다. 얼굴이란 단어의 원뜻은 ‘사람의 얼을 담은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얼꼴’이 변형되어 얼굴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목소리에도 얼이 담겨져 있습니다. 얼굴 모양을 보면 그 사람의 걸어온 길과 영성을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많이 들어왔던 단어들이나 혹은 겪었던 슬픈 사연들은 그 사람의 얼을 결정짓게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냄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갖고 있는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이민생활 처음 시작할 때 누구든지 겪어야 하는 문화나 음식이 다른 것입니다. 무슨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냄새가 다릅니다. 한국사람들끼리 어울려 지내는 지방에서는 그런대로 서로 같은 냄새이므로 받아들이기가 쉽겠지만 외국생활에 공동체 생활로 들어가게 되면 제일 처음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상대방이 받는 반응들입니다.

미국은 그래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지금은 좀 나은 것 같습니다. 88올림픽이 있기 전 필자는 막내아이 해산을 앞두고 영국으로 이민을 간적이 있습니다. 한국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때는 그야말로 미개인 나라로 취급하던 때였습니다. 인종차별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하였습니다. 불고기 양념에 피할 수 없는 마늘냄새를 그들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고기를 구워 먹다보면 어느새 옆집에서 종이쪽지가 날아옵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은 마늘을 씹지 않고 꿀떡 삼키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조그만 있노라면 몸에서 마늘냄새가 나옵니다. 온몸에 있는 땀구멍에서 스물 스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사람마다 40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도 이 냄새에 포함됩니다. 어른이 되면 어른다운 냄새, 크리스천이면 거기에 걸맞는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사모들에게도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평생을 목회에 찌들어서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구부정한 몸매로 늙어가는 사모들은 은퇴 후에 아무리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지나간 생애 후회한들 자신만 억울할 뿐입니다.

그 옛날 한국 초대교회 사모들에 비하면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전문화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사모들에게도 각자 전문기술이나 직업이 있어서 매우 떳떳합니다. 우선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있는 사모가 있는가 하면 위치가 뚜렷해서 누구에게나 꿀리지 않고 어깨를 쭉 피고 다니는 사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50, 60대의 사모들은 아직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마냥 천사표를 달고 다니며 자신의 세계를 잃어 버린 채 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를 지닐 여유나 환경 조건이 주어지지 못합니다. 성도들에게 눌리고 남편에게 눌리고 자식들에게 눌려 자신의 세계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갱년기를 맞게 되면 속이 텅텅 비어 허전한 나머지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하지요.

자신을 찾아 나서기를 수없이 시도한다 해도 그들에게는 용기가 없습니다. 환경의 조건조차도 허락지 않습니다. 과감한 용기를 갖고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에는 과거의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모들의 모임 속에 들어가 보면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목회를 재미있게 하는 동료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조언도 받습니다. 충고도 받습니다. 아이디어도 얻습니다. 결단도 합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막상 시도를 하려 하면 자신부터가 얼마나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가를 알게 되는 순간 자신도 놀라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싫어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 증세는 심해집니다. 그러므로 노인의 특징 중에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입니다 사모들은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아도 쉽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남편인 목사의 도움이 절대 필요한 데 비해 남편 목사님이 쉽게 적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도 성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잘못한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등등 아내에 대한 자신감이 없거나 혹은 남편의 가치관이 잘못되었을 경우 사모들은 원치 않는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자서 몸부림쳐 봐도 이런 소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남편에게 자신에 대한 신념과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도록 확고하고 단호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용납하고 자신이 누구임을 확실하게 알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독특한 냄새가 나의 존재감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인 남편을 만나 내가 원하는 삶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사모의 틀을 쓰고 살다보니 많은 세월이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사모 특유의 냄새, 인위적이고 극히 자발적이 아닌 로봇 같은 사모의 생애 긴 시간 동안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는 냄새, 그것이 사모의 존재를 측정해주는 것처럼 되어져가고 맙니다. 목회생활을 마치고 현장에서 물러나 뒤안길을 돌아볼 때, 극히 익숙해져 있는 냄새 그러나 이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원망과 후회는 더욱 무거운 짐이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내 안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 몸에서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그분 곁으로 가면 됩니다. 아무리 좋은 냄새를 가진 사람도 더럽고 추한 냄새나는 곳으로 가면 좋은 냄새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듯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내 몸에 배기 위해서는 그분께로 가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냄새가 내게 덮여지는 순간만이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존재감은 그 분 안에서만이 확고히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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