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운 목사 (벅스카운티장로교회)
싱그런 열매를 보며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결실의 계절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창조주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리는 풍성한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강조점을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라는 말씀에 두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1. 나무의 좋고 나쁨이 열매에 달려있다. 43절에서 예수님은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나쁜 열매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면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나무요 못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못된 나무라는 뜻입니다. 과수원에 심긴 포도나무 중에 어떤 나무는 좋은 포도를 맺고 또 어떤 나무는 못된 포도를 맺었다면 그 열매로 보아 좋은 포도가 열린 포도나무가 좋은 나무라는 말씀이지요. 같은 포도원에 심겨서 같은 햇빛을 받고 비를 맞고 같은 돌봄을 받으며 자랐음에도 어떤 포도나무의 열매는 좋고 또 어떤 포도나무의 열매는 나쁘다면, 주님의 동산에 심겨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과 성령의 단비를 받으며 우리들의 포도원지기가 되신 주님의 같은 돌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같은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가 있는가 하면 못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 같은 목회자와 교회와 성도도 있음을 봅니다.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인생의 참된 가치는 그 사람의 외적인 업적보다도 속사람이 성숙하여 생긴 열매인 것입니다. 잠시 모든 일을 멈추고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2. 나쁜 나무는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44절에서 예수님은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43절에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좋은 나무요 못된 열매를 맺으면 못된 나무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본 절에서 가시나무와 무화과, 찔레와 포도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시나무와 찔레는 가시가 있는 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열매를 의미하는 무화과와 포도를 가시나무와 찔레에 대조시키신 것은 가시나무와 찔레를 못된 나무로 비유하시기 위함이신 것입니다. 본 절에서 들을 수 있는 예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시나무에서는 무화과를 딸 수 없고 찔레에서는 포도를 딸 수 없음같이 못된 나무에서는 절대로 좋은 열매를 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가시나무가 함께 있는 곳과 찔레와 포도나무가 함께 있는 모습을 가리키시며 이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가시나무와 무화과나무, 찔레와 포도나무 같은 사람들이 섞여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교회를 가리키실 때 가시나무나 찔레가 아니라 무화과나 포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나무의 좋고 나쁨을 열매를 보고 안다면 사람은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45절에서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라고 말씀을 마무리하십니다. 앞의 두 절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모든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는데 못된 나무에서는 절대로 좋은 열매를 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본 절에서 앞에서 말씀하신 나무의 열매를 사람의 말과 연관 짓고 계시는바 그것은 나무의 좋고 나쁨은 각각 그 열매로 안다면 사람은 각각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좋은 사람인지 못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선한 것을 쌓았기 때문이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악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한 사람의 말이 선하고 악한 것은 그 사람이 마음속에 심고 기른 선과 악의 열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나무의 열매를 말씀하시기 전에 41-42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라고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7장에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과 짝이 된 점을 생각해 볼 때 본 단락에서 가시나무와 찔레를 언급하신 것은 남을 찌르는 가시 같은 말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결론은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좋고 나쁜 것을 나는 것처럼 사람은 각각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좋은 사람인지 못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좋은 말인지 못 된 말인지를 살피고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용1. 예수님의 선하심을 우리 안에 채워달라고 간구하고 선한 말을 하기를 힘씁시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좋은 입술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속사람을 예수님의 선으로 채우는 작업이 우선되고 중시되어야 합니다. 오래 믿었더라도, 중직자라도 누구든지 입에서 남을 죽이는 말, 찌르는 말, 저주하는 말, 더러운 말과 같이 악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이 지금 못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반면에 초신자라도 남을 살리는 말, 세우는 말, 축복하는 말, 깨끗한 말과 같이 선한 말을 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므로 그런 말을 하고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적용2. 예수님의 밝음을 우리 안에 채워달라고 간구하고 밝은 말을 하기를 힘씁시다. 마음이 어두우면 어두운 말이 나오고 마음이 맑으면 맑은 말이 나오는데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천국의 밝은 마음이므로 우리 안에 예수님의 밝음이 채워지면 절로 밝은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시기하는 말, 불만스러운 말, 다투는 말, 교만한 말, 부정적인 말과 같이 어두운 말을 주로하면 그 사람의 속사람이 지금 어둡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말, 감사하는 말, 화목을 도모하는 말, 겸손하고 온유한 말, 긍정적인 말을 주로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속사람이 지금 예수님의 밝은 마음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서 보기만 하여도 사진만 보아도 아니 생각만 하여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고 우리를 아는 주위의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열매를 맺은 좋은 나무 같을까, 아니면 못된 열매를 맺은 못된 나무와 같을까에 대하여 우리들의 속사람을 면밀히 살피며 깊이 생각해 봅시다. 설교, 기도, 찬양, 성경공부에서 하는 말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이 하고 있는 말이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선하고 밝은 말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