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봉 목사 (백민교회)
얼마 전 새 차로 바꾸었습니다. 딜러가 열쇠를 건네주면서 ‘모든 파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니 잘 달릴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했습니다. 딜러 인사치고는 특이해서 기억이 납니다.
우리말에 ‘주제 파악을 해라, 생긴 대로 살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격려의 말이자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삶은 물론 옆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이 주제 파악이 잘 안된 분들이 참 많기도 해 보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대 혼란이 일어나는 듯 보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주제는 무엇일 것 같습니까? 한국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 크리스천, 성도로 불리워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 아빠를 닮고 엄마 아빠를 보며 배우며 따라가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닮고 그 분을 따라 삽니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이 어떠한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을 알고 누리며, 날마다 경험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말하라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 놀라운 신분의 변화는 벧전 2:6-8의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서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신분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아야 할 차례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배우고 닮아 그 길 따라 삽니다. 이것이 마땅한 본분이요 도리요 복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구별된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임과 같이 성도란 따로 분리되어 세워진 자라는 뜻입니다. 처녀가 결혼하면 남편 위주로 모든 것이 모아지듯이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초점을 맞추는 존재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 따라야함을 말하면, 우리 한국분들은 마음들이 여려서인지, 술끊고 담배끊고 이런 저런 취미생활도 자제해야 하는 것부터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에 활기도 사라져 가고 능력도 쇠퇴합니다. 결국 오래지 않아 ‘이것 신앙생활도 좋지만 재미가 없어 살기가 힘들다’고 실토합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성도가 절제해야 할 것들이 많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하지 않던 일을 시작하고 더 집중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구별된 성도’를 성경대로 이해하고 생활에 접목시켜야 합니다. 롬12:1-2 말씀이나, 벧전1:15-16 말씀을 보십시오. 구별된 성도는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 움츠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고 빛되게 살아갑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내기 엄마가 아기를 목욕시키고 그 물을 버린다는 것이 그만 아기까지 같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물들면 안됩니다. 그러나 그 세상을 멀리하고 피한다는 것이 성도로서 세상을 향해 가진 사명까지 피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요 일군입니다. 부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선전부장으로 우뚝 서서, 진정 구별된 자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중보자의 생활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신분이 어떠한지를 밝혀줍니다. 택하신 족속이라 했는데, 이는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으셔서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거룩함으로, 의로움으로 또 빛으로 능력의 영향력을 미치며 통치해 간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뿌리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시키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측면들은 성도가 그렇게 맞추어 살 때에 가능해집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앞과 세상 앞에서 맡은 바 기능을 발휘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살려 애쓰고 힘씀으로, 그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소원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사모하고 따라 사는 동안 자신이 성화되어 갑니다. 하루에 세 번 씩은 거울을 보아야 사람들 사이에서 실례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성도가 하루 적어도 세 번 씩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앙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한다면, 그 삶을 통해 이웃을 복음으로 이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툼과 이기심에 요동치는데, 저 쪽 한 사람은 조용하고 평안하다면 당연히 주목을 받을 것이요,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이 바로 ‘조용한 전도’가 될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어른들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부서진 장난감들을 모아 싸움 한 복판에 쌓았습니다. 그 중 큰 아이가 “어르신들 제발 싸우지 마세요. 그렇게 싸우시면 모두가 이렇게 부서질 것이고 그러면 누가 우리 마을에서 살려고 하겠어요” 이렇게 해서 파국을 치닫던 싸움이 끝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증거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은 곧 이어 사람과도 화평합니다. 중보자로의 삶은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3.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합니다.
9절 후반절에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목적이 선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이토록 복된 삶을 살도록 은총주신 목적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목적은 바로 우리 주님이 하신 아름다운 덕을 만방에 선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특별히 힘써주신 덕분에 중학교를 진학했습니다. 그 고비가 저의 인생에 아주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50년이 넘도록 그 선생님을 자랑하고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를 죄의 어두움 속에서 끌어내 주시고, 죽음의 사슬을 끊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어찌 안 그런 체 합니까!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역사를 ‘아름다운 덕’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는 의미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어떤 이론이나 또는 능력으로만 설명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덕’에 속한 일입니다. 죄가 없는 분이 죄인들을 대신해 죄인이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인 분이 그 권세, 그 힘을 다 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죄인들의 손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조롱당하거나 침뱉음을 받을 일 하지 않으신 분이 우리를 대신해 잠잠히 당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죽음의 문턱을, 우리 위해 넘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아름다운 덕’이라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대목을 설교하시면서, 모든 선교사는 선덕사로 불리워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 뿐 아니라 모든 성도 역시 선덕사로 부르고,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그 생애 중 세 차례 크게 선전되십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하실 때 목동들에게 천사들이 예수님을 선전했습니다(눅2장).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군중이 모여 종려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며 선전했습니다(마21장,눅19장). 미래에 있을 일로, 정한 때가 이르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대대적으로 선전되십니다(계2:26,22장). 우리는 그 사이, 곧 예수님 재림이 임하기 직전 시대를 삽니다. 사2:2-3에 보면 열방은 결국 여호와의 산,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곳으로 모여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때를 바라보며, 다시 오실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미리 미리 선전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믿음 생활을 머리로, 능력으로 하려는 경향을 많이 나타냅니다. 믿음의 사람은 덕을 가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자기희생과 인내와 섬김을 자꾸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에 남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분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학벌도 없고 집안도 내놓을 것 없는 처녀가 오직 고운 심성과 신앙 하나로 내노라 하는 집안에 시집을 갔습니다. 처음 5년여의 온갖 멸시와 무시 받는 험한 골짜기를 묵묵히 예수님을 부르며 견디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출근하는 남편 주머니에 은혜받은 말씀과 간단한 격려의 말을 적은 쪽지를 매일 넣어주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남편 마음이 감동되고, 결국 온 시댁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보았습니다. 주님은 자기에게 고운 마음을 드리며 살기로 소원하는 자에게 은총을 베풀어 좋은 열매를 보게 하십니다.
우리 생애가 예수님을 선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축복이요 또 특권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선덕사입니다. 그리스도를 선전할 수 있는 그릇, 자격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셔서 도우실 것을 믿고, 담대히 주님 선전하시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