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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한 길을 선택한 사람

(시1:1-6)

하경남 목사 (브라질 서울교회 담임)

복 받은 사람과 복 있는 사람은 다르다. 복 받은 사람은 과거에 복을 받은 그 덕으로 사는 사람이다. 부모에게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은 사람, 건강을 물려받은 사람, 장수의 복을 받은 사람... 복 받은 사람이다. 귀하다. 영적으로도 그렇다. 인생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 그 놀라운 체험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귀하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 늘 복이 함께 하는 사람, 복이 따라다니는 사람, 늘 복속에 사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순간마다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복이 한 번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다. 늘 복이 따라다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복이 보이는가? 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복 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있다.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세기 39장에 요셉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애굽 사람은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는다. 온통 눈에 들어오는 자연만물을 섬기는 우상집단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을 볼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방인의 눈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보인다. 복은 안 보여도 복이 함께 하는 사람은 볼 수 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가는 길이 다르다. 그게 오늘 말씀이다.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다. 잘못 들어가면 대포를 맞고 미사일을 맞는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걸어가야 하는 정해진 길이 있다. 그 길은 보기엔 재미없어 보이지만 가장 안전한 길이다.

1. 세 가지를 부정하라(1절).

1)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악한 얘기를 자꾸 들으면 영향 받는다. 기분이 좋지 않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든다. 화가 난다. 브라질TV에서 매일 저녁 그 날의 강력사건을 다룬 방송을 무려 2시간 한다. 처음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면서 봤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보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영향을 받은 거다. 그래서 안 본다.

복 있는 사람은 듣는 것을 삼간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들려오는 게 너무 많다. 그 모든 말들은 우리 영혼에 영향을 준다. 잘못 들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교회가 멀어지고 기도의 자리가 멀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문이 없다. 별별 소릴 다 듣는다. 소리에 영향 받는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마음에 문이 달려 있다. 그래서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한다. 마음의 문을 단속하자. 2)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 죄를 짓는가? 적어도 한 번은 생각했기에 죄를 짓는 거다. 바로 그 생각, 충동질을 마귀가 한다. 의심을 커지게 한다. 미움을 커지게 한다. 분노를 커지게 한다. 이게 충동이다. 이 충동을 이길 수 있다면 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죄를 이기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악한 자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악한 자는 우리 마음을 충동질 하는데 선수다. 어쩌다가 죄에 빠졌는가?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나와라.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나와라.

3)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내 세상이다. 내 욕심대로 살면 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말 한 사람은 무한정으로 빚을 끌어들여 자신도, 나라도 어렵게 했다. 도망갔다가 잡혔다.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넓고 튈 곳도 많다.’ 이 세상은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가 아니다. 깃발 꽂고 말뚝 박으면 내 땅 되는 세상 아니다. 주인이 계시다. 교만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게 주신 자리는 봉사하는 자리지 다른 사람 쥐고 흔드는 자리가 아니다. 판단하며 정죄하라고 주신 자리가 아니다. 너무 의인되려 하지 말라. 협조하지 않으면 욕하고 편을 가르려고 하는 것 모두가 오만한 모습이다. 내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겸손이 복 있는 사람이다.

2.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2절).

세상엔 그리스도인들보다 잘사는 사람이 엄청 많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악 가운데 있어도 삶이 비참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은총의 복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진짜 주시려는 복은 따로 있다. 그 복에 비하면 이 세상의 복은 비교대상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운데 심령으로부터 받는 복이다. 우리가 받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커지게 되고 그 믿음만큼 큰 복을 받게 되어있다. 복음서에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후렴 같은 말씀을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결론은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생긴다. 믿음의 몸집을 불리는 게 중요하다. 믿음의 몸집은 말씀에서 온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고 큰 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복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하는 거다. 그래서 지혜가 생긴다. 이게 우리의 복이다. 지혜는 사람에게 새 힘을 준다. 낙심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기도와 말씀읽기를 조언해보라. 지혜는 머리 굴리는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거다. 지혜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많이 닮은 사람이다. 이게 복이다.

3. 형통의 복(3절).

팔레스타인에는 우기가 있고 건기가 있는데 죽는 나무가 많다. 그런데 언제나 푸르게 잘 자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샘 곁이나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다.

오늘 말씀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보니까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언제나 형통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뿌리가 하나님께 닿아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처음부터 형통한가? 아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보다 더딘 인생을 산다. 말씀대로 하기 때문에 기초 다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른 사람들은 그때그때 눈치만 잘 보면 살아남는다. 이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성경대로, 말씀대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엔 너무 어렵다. 망할 것 같다. 불가능이다 싶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깨닫고 출발하려니 다른 사람보다 늦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이런 일로 고민하지 않는다. 정신 차리고 보면, 나보다 한참 앞서 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생략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기억하라. 말씀으로 다져진 사람을 말씀이 보호한다. 말씀이 일 하신다. 처음엔 내가 말씀에 순종하는지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말씀이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씀의 능력이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진짜 인생 산 거다. 인정받아야 성공이다. 이게 제대로 산 인생이다. 어떤 길을 갈까?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로 가야 한다. 속도는 다음이다. 방향을 잡아야 빨리 가는 게 유익이다.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자기 할 말 다 하지 못하고, 자기 정욕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반문한다. 모르는 소리다. 말씀의 능력이 우리 속사람을 얼마나 큰 기쁨으로 채워주시는지. 기쁨이 우리의 양식이다.

세상은 이 세상의 것을 많이 갖는 것을 복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많이 가졌기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오래 살았기에 가서는 안 될 곳까지 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귀중하게 보신다. 결국 한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린 자들만 영원한 하나님의 복 가운데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이 함께 하신다. 지금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말씀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래서 내 인생은 뒤처진다고 고민되는가? 아니다. 지금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의인들의 회중에 포함되어 있는 복된 인생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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