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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기도의 삶

(다니엘 6:10)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기도는 영혼의 호흡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 가운데,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호흡은 생명유지의 필수조건이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신앙이 병들었다 혹은 죽은 신앙’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기도를 멈추는 것이 생명주신 하나님 앞에서 영혼에 치명적인 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혼의 호흡인 기도와 생명력 있는 참된 신앙은 일치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고 부르짖음이 사는 길

간혹, 걱정과 염려가 지나치면, 혀 좌우가 헐어지고 혀 안쪽에는 바늘같은 것이 돋고 입안이 바짝 바짝 마르게 되고 마침내 밥맛도 없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근심과 염려가 혀에서부터 제일먼저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런 어려움의 순간에도 다시 입을 열어 혀를 사용해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영혼의 불안과 염려를 혀로 토설케 하실 때, 마침내 입안의 혀를 움직여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시작할 때, 몸 전체가 회복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능력있게 임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기도하고 부르짖음이 살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산 제물(Living Sacrifice)과 예배의 열납

기도 가운데 우리영혼이 살아있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예배의 온전함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에 ‘하나님 앞에 죽어있는 것은 산제물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제사는 살아있는 생축의 제물(Living Sacrifice)’이 될 때 열납하심을 말씀합니다. 즉, 우리 자신이 살아있는 생축-흠없는 제물이 됨으로서,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7장22절에 호흡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고 말씀합니다. 호흡이 멈춰지는 것은 심판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영혼의 호흡임을 절대적으로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예배가 산 제물로 열납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육신은 신체장기의 작용으로 움직여질지는 몰라도 영혼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서 영혼의 호흡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함으로, 내 속에 더러운 것과 지저분하고 추한 것들이 입술의 기도를 통해 계속 밖으로 나오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마침내 하나님 앞에 흠없는 온전한 제물로 열납되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영혼의 호흡자-다니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의 호흡을 쉬지 않았던, 그래서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삶을 살았던 다니엘을 소개합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상황에 상관없이 영혼의 호흡을 쉬지 않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숨을 쉬듯, 무시로 기도의 호흡이 살아있었던 사람이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 다니엘의 삶을 하나님이 산 제물(Living Sacrifice)로 흠향하시고 사용하여주셨던 것입니다.

영혼의 호흡의 특징은 쉬지 않는 한결같음에 있습니다. 우리 한인교회에 허락하신 고정적인 기도시간의 축복이 ‘새벽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가장 고정적인 시간에 영혼의 호흡이 가능한 축복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전날 밤부터 의식하고/긴장하고/노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습관적으로 새벽미명에 기도하러 가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도 이 땅 가운데 계실 때에 의식적으로 고정적인 시간에 기도하기를 애쓰셨음을 알게 합니다. 물론 그가 아침 일찍 기도하러 가신 것에 대해서는 두 곳에서(막1:35/눅4:42) 언급하셨지만, 이 두 번의 기록을 근거로 예수님이 3년 동안 딱 두 번만 새벽기도 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365일 주님의 일기책이 아니라는 것과 마가복음 1장이 주님의 하루일과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소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국교회의 현실을 뛰어넘는 주님의 삶의 내용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무릎꿇은 다니엘

다니엘에게 하루 세 번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의 기도시간이 확실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니엘처럼, 성도들과 목사님들 가운데 자신의 고정적인 기도시간이 분명한 분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셨음을 봅니다. 목회의 열매가 풍성한 어느 목사님에게 겸손히 그 비결을 물어보았을 때, 그 목사님의 말씀하시는 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저희 부부가 30년 동안 새벽무릎을 꿇었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이민교회도 새벽을 깨우며 고정적으로 기도하는 교회는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시고 부흥을 허락하시는 것을 봅니다. 비록, 이른비의 축복이 없더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릎 꿇을 때에 반드시 늦은 비의 은혜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삶의 환경을 넘어서는 한결같은 기도

또한, 다니엘과 같이 한결같이 기도의 무릎을 꿇는 사람은 죽음의 상황앞에서도 환경을 넘어서는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속에 담대하여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제물로 열납되어, 이방인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서 나라와 정권이 바뀌어도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늘 무릎꿇기를 각오하고 사는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사용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의 감사를 드리는 한결같은 기도

다니엘과 같이 한결같이 기도의 무릎을 꿇는 사람은 믿음의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 절 마지막 부분에, 다니엘이 감사했다고 기록합니다. 다니엘이 어려움 중에 드린 기도는 참된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감사할 것이 있어서 축복의 맛을 본 다음에 드리는 것도 물론 감사입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앙의 감사는, ‘삶의 상황은 그렇지 못한데 - 나의 계획은 이러하지만, 하나님께서 어찌하시던 그것이 나의 인생에 최고의 좋은 길이 될 줄로 믿습니다’는 바로 그런 고백 속에서 드려지는 것이 참된 믿음의 감사가 온전한 감사인줄 믿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다니엘에게 사정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긴박감이 흐릅니다. 원수들과 사망의 죽음이 눈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사자굴에서 죽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믿음으로 감사하는 다니엘을 봅니다. 사자굴에 들어가게 상황에 자신을 매지 아니하고 죽음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늘 교통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믿음의 축복인 것입니다. 사막광야같은 이민 땅을 살아가면서 기도의 호흡을 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음으로, 기도의 호흡을 쉬지 않고 이어가며, 상황을 뛰어넘는 담대함을 가지고서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사용하시는 믿음의 귀한 권속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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