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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살아보기

(마태복음 14:2-33)

조성근 목사 (갈멜산금식기도원 안양/강화/LA 담임)

우리는 어떠한 문화적 도전에도 말씀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일은 여전히 주저하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입니다. 앞선 신앙의 선진들이 말씀대로 사는 일에 용사였음을 잊은 채 그분들이 누렸던 영광스러운 일만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모순입니다.

말씀은 열심히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하지만 그 모든 목적은 말씀대로 사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여야 마땅합니다. 말씀대로 살아보기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고 과제입니다.

본문은 이전의 내용인 오병이어의 기적과 연이어지는 내용으로 땅에서의 주님께서 바다에서도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부터 본문까지를 세 가지 사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빈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풍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둘째는 거친 풍랑을 만나 고난을 겪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평강을 주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하나님을, 셋째는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도록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세 마디 말씀을 이 시대의 우리를 향한 의미 있는 순종해야 할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주라’고 하셨습니다(16절).

예수님께서 벧새다 광야로 나아오는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시고 모여든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자 했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스스로가 먹을 것을 찾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어린아이가 가져온 도시락을 축사하시고 제자들의 손길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나눠주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라’하심은 위대한 역사의 현장에 제자들이 동참 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기적의 현장에 초청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과 감격의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라’하심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없는 돈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의도는 복을 주시고자 함이지 빼앗고 망하게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지 못하는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입니다. 주라고 하시는 말씀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그들이 아닌 지금 말씀을 접하고 있는 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라’하심은 우리가 자칫 바르지 못한 신앙을 배우면 탐욕에 젖기 쉽고 비뚤어진 야망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가라’고하십니다(2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하셨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요6:15에는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왜 그토록 다급하게 제자들이 그곳을 떠나도록 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그 땅이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군중과 아직도 가꾸어져야 할 연약한 제자들을 분리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다짜고짜 재촉하여 보내셨으니 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배를 타야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이들이 놀랄만한 일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현장에 머물러 있고 싶었을 것인데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건너편으로 가기위해 배를 탔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하는 일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특별한 설명 없어도 스승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깊은 뜻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설명한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라’고 하심은 주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영문을 몰랐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더 깊이 깨달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하시면 모처럼 머물고 싶은 곳에서도, 아름다운 풍경과 편안한 잠자리, 따뜻한 사람들의 손길이 있는 곳에서도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도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을 더 크게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은 주님의 말씀 안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라’하시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 어떤 일에도 제자들을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가라’하셨기에 ‘가는 ’그들을 ‘가게’하십니다. 나에게 엄습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가다가 만나는 어려운 상황 앞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심을 확신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정말 ‘가라’하셨는지 아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께서 ‘가라’하셨다면 그 길은 분명한 길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29절).

거친 풍랑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두려움의 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누구라는 것을 알리시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정시키셨습니다. 모두가 그것으로 만족했을 때 베드로는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발언을 했습니다. “나를 오라 하소서” 바람이라도 멈추기를 원하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 속히 배에 타시기도 전에 당장의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제자들과 달리 베드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물위를 걸었습니다. 여전히 거친 물결이 있는 바다에서 고난을 겪었던 베드로, 그가 이제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에수님께서 ‘오라’하심은 사모하는 자들에게만 들리는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태와 안일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모하는 자를 만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갈망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라’하심은 책임져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능력의 주께서 하신 ‘오라’는 짧은 한마디 말씀으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기적은 많은 설명보다 주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이 시대는 기적이 없는 시대가 아니고 믿음이 없는 시대입니다. 예수께서 ‘오라’하심은 정작 주의 허락이 있을 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거룩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풍랑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있었던 그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말씀이 있으셨으니 나와서 걸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세 가지 사건 속에 주님의 말씀 세 마디를 따라 우리도 순종하면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의 행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라’하신 말씀에 순종하면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돌보심 속에 마침내 다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라’하셨다면 남다른 비전과 거룩한 열심을 기뻐하시는 주님께서 누구도 경험치 못한 기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기다리십시오. 주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주의 말씀을 따라 담대하게 행하십시오. 기다릴 때보다 들을 때보다 행하는 일은 더 큰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간증과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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