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목사 (새생명선교교회)
삭개오의 이야기는 모든 구원 받기 원하는 자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본래 삭개오는 물질 만을 추구하는 구원과는 먼 거리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을 보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진실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초대교회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그 후 가이사랴에서 고넬료의 후계자가 되었고, 베드로의 동역자로 있다가 가이사랴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의하면 삭개오는 여리고라는 도시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장이라는 말은 삭개오의 아래에서 일하는 여러 명의 세리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리는 주로 로마정부의 앞잡이로 일해야 하니 사회적으로 경멸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면허증 가진 강도’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라는 직책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돈을 많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지요.
여리고는 국경도시였으므로 무역이 활발하여 아마도 세금이 많이 걷혔을 것입니다. 또한 여리고는 향료의 산지가 되어서 세금이 더욱 많이 걷히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삭개오가 부자라는 말을 보아서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일하면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드렸을 것입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정부와 백성들의 중간 역할을 하면서 자유로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리라는 직책은 부자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였으니 얼마나 부자였겠습니까?
1.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원함(3-4절)
삭개오가 이렇게 부자로서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 같았지만, 주님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면 만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영혼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재물이 사람을 만족하게 못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남으로 진정한 만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주님을 보기 원했지만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기도 했지만, 삭개오는 키가 작은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려는 영혼의 갈증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장애물이 있습니다. 장애물만 핑계대고 있으면 결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장애물을 극복할 수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세리장과 같은 점잖은 사람이 뽕나무에 올라갑니까?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을 보기 원하였고, 영혼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당신은 주님과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어떠한 특단의 대책을 취하고 있습니까? 그냥 환경만을 핑계대고 주님을 가까이 보기 원하는 영혼의 간절한 소원을 자꾸 미루고 있습니까?
2.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심(5-7절)
삭개오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데서 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무나 가까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위를 쳐다보시면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라고 하시면서 친절히 가까이 오셨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같이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가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만나기 원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친절을 베푸시면서 가까이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찾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실상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 문을 두드리며, 우리가 마음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실로 주님을 우리의 삶에 받아드리기 위해서 마음 문을 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주님께서 자기 집에 오신다는 말에 너무 감격하였습니다. 즐거워하며 영접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삶에 가까이 오시는 일은 정말로 감격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어떻게 예수님 같은 분이 삭개오와 같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실 수가 있느냐가 그들의 이유였습니다. 아무리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도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 같이, 내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개인적인 삶의 깊은 곳까지 찾아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주님께 보여주고 싶지 않는 어두운 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젠가는 정리해야할 것 아닙니까? 때로는 나 혼자서 정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오셔서 청소해 주셔야할 부분도 있습니다. 내가 다 해결하려면 힘이 너무 들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합니다. 그저 우리는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나와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나의 부족한 면도 채워주시고, 내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부분도 도와주십니다.
3. 구원이 삭개오에게 이름(8-10절)
주님께서 삭개오의 삶에 오셨을 때 진실로 구원이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고백하기를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부자는 예수님께서 소유를 전부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 때, “심히 근심하였더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 소유를 절반이나 팔고,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삭개오의 결심이라기보다, 회개의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구원의 기쁨에서 나오는 진실한 고백이요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삭개오라는 사람은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 같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고, 구원의 증거를 나타냅니다. 주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삭개오와 같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