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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시느니라

고후11:7-11

김충한 목사 (넘치는교회)

동부에 가면 알링톤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1,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을 통하여 순국한 군인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의 묘지도 있습니다. 케네디를 비롯하여 여러 용사의 묘에는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마음을 찡하게 하는 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무명의 용사들의 묘 입니다. 그들도 나라를 위하여 피 흘려 싸웠지만 시체조차 찾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는 로보트 같은 군인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낮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지킵니다. 그리고 커다란 관 모양을 한 직사각형의 대리석 통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But, God knows.’ (그러나,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많은 말 많은 글로도 감명을 주지 못할 때가 있는가 하면 짧은 말 짧은 글이 감명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바울도 고린도 일부 사람들로 부터 배척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 서신서인 고린도 후서를 쓸 당시에 바울이 직면한 문제였습니다. 교묘하게 바울을 비방했던 자들이 공격의 무기로 바울의 진실성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사도가 아닌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돈을 탈취하여 자신의 사비로 충당 했다는 것이 였습니다.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비난을 받게 되니까 고린도 교회의 착한 교인들이 동요되고 갈팡질팡하는 현상이 있게 되어 그는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도로서 주님께 누가 될까 해서 전혀 마음에는 없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 크고 작은 은사를 상기 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일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울이 자신에 대한 말을 하면 그들은 말하기를 “바울은 자랑 꾼이다” 라고 몰아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보라, 바울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여러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다가 한 마디로 일축 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예수님 시대 때의 황제는 왕좌에 앉아서 물릴 정도로 진수성찬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광야에서 굶주리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세상의 창조 주 이시며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법들의 입법자 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굶주리시다니…

사람은 모릅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지한 사람들이기에 십자가에서 “네가 메시아 이 어 든 거기서 내려와 보라” 하며 조롱하고 침 뱉고, 손가락질 할 정도로 사람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데 아픔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는 그곳에서 살인죄로 강도죄로 오지 아니하고 복음전도 하다 온 것을 하나님이 아시니 감격의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세의 아들 중에서 한 명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 그는 큰 아들에게 기름 부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 시며 모두다 알아주지 안았던 다윗에게 기름을 붇게 하셨습니다. 엘가나 에게는 부인이 둘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부인은 한나요 두 번째 부인은 브닌나 였습니다. 둘째는 자식이 있었는데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식 없는 것으로 인하여 브닌나에게 무시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 한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얼마나 브닌나가 괴롭혔는지 성경은 표현하기를 그 대적 브닌나 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당했던 억울함을 하나님께 다 털어 놓으며 기도를 하다 보니까 점잖은 기도를 할 수가 없어서 때로는 소리도 지르기도 하고, 바닥을 구르기도 하면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자 한나의 마음을 누가 알아 줍니까? 남편이 알아 줍니까? 브닌나가 알아 줍니까? 그렇다고 제사장 엘리가 알아 줍니까? 한나의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삼상1:19에 보면은요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신 결과로 위대한 사무엘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에게 그 후 5남매를 하나님께서 더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성도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만나면서 삽니다. 어려운 일도 만나게 되고 기쁜 일도 만나게 됩니다.

우리 교우 중 어떤 이는 자녀가 문제를 일으켜 고생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남편이나 아내가 병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문제로 고생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생각지 못한 일들을 만나 고생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에게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사야 49:14-16)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시고 잊으셨다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젖을 먹이는 아기 엄마가 어떻게 자식을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혹시 젖먹이는 엄마가 아기를 잊을 찌라도 우리의 머리털 까지 세시고 눈동자 같이 아끼시는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의 억울함과 수고와 충성을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을 알았기에 자신을 향한 공격과 박해 속에서도 오직 한마디로 일축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한번 더 따라 하십시다 “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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