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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즐거움

롬 5:1-11

이 종 용 목사 (코너스톤교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 중에서도 평강을 느끼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면 더 강하고 깊어지고 이 땅이 줄 수 없는 참 복으로 부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신앙 때문에 때대로 고난과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순교 당한 분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인생의 실패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고 그는 참 불행한 사람이다 실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요셉의 삶을 닮고 싶어 합니다. 요셉의 삶을 들어가 보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만 그전의 삶은 고난과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힘든 길을 걸었던 사도바울의 인생을 보며 위대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간절히 기도하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 엘리야 요셉을 이야기하면 그분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승리의 삶을 원한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화평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1절에 ‘화평을 누리자’는 말은 이미 화평을 주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내 마음을 맞추는 삶입니다. 내가 고집 부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달라는 것이 명령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내 고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샘처럼 솟아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과 화해를 해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회복되어야 그때부터 우리는 이 땅에 부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화해가 필요한가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로 죽음이 온 거에요. 죄라는 질병으로 온 것이 죽음이고 이 죽음은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죽음은 영의 죽음과 육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의 죽음은 모든 평화를 깹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먼저 이 땅에 내려와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그 대속의 피가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화해였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화해의 다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화해를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지요. 이 영접은 회개와 같이 가는 것이지요. 믿음과 화해가 같이 가는 것이지요. 회개하고 예수를 구원자로 주인으로 시인하고 믿고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에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회개는 그 자리를 떠나 아버지께로 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삶을 계속누리기 위해서 주안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데 방해되는 것을 기도를 통해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오직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만이 이루어집니다. 내 노력이 아닙니다. 이 참된 평화가 끊임없는 이어지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해주십니다. 기도는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쉬면 안 됩니다. 그래서 호흡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 화평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매 순간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롬5:2). 여러분 마음속에는 즐거움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지금도 무언가 추구하며 바쁘게 삽니다. 그럼에도 참다운 만족, 기쁨, 행복도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사랑의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달리신 예수님 그 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십자가의 그 보혈을 매일 매순간 불러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라면 절망입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그 고난이 끝이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머물지 않고 다시 살아나시고 부활하셨어요.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어느 날 재림하실 것입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말이 성경에 있습니다. 질병가운데서도 가정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물질의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해와 모함 속에서도 요셉처럼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우연한 고난은 없어요. 거기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은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인내를 통해 인격이 다듬어지고 훈련됩니다. 이 고난이라는 것이 다음단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욥은 극심한 환란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하나님이 함께 하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하실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삶속에 부어졌습니다. 환난을 인내로 감당할 때 우리 속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이 사랑을 흘러 넘쳐야 합니다. 퍼주어도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을 이웃에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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