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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의 감사

하박국 3장 17-19절

엄영민 목사 (오렌지카운티제일장로교회, OC 교협회장)

서론: 재앙의 창가에서 부른 감사의 노래

믿는 사람들의 모습 중에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시련과 고통 앞에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 친한 친구의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향 선영에 아버님을 묻었는데 묘지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동네사람들이 막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동네사람들이 몰려와서 장례식장에서 왜 우는 곡소리가 안나고 노래 소리가 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고 막 상주들에게 막 꾸짖었습니다. 그래서 상주들 중에 몇 분은 그저 우는 체를 했고 좀 고집이 있는 분은 계속 찬송을 부르고 그런 광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찬송만이 아니라 감사도 그럴 것입니다. 고난 앞에서 감사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앞에서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삶에도 고난은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더 없이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고 근심도 없는 것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비슷한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가정의 문제 다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들이 겪지 않는 특별한 시련도 겪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았다는 것은 그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예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고 무병장수할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고통받는 크리스천들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시지 결코 우리의 현실을 과장하거니 포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삶에도 시련은 있을 수 있고 믿음의 삶에도 흉년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은혜이지 만사형통한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하박국 선지자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비전이 있었던 사람이었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었고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이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현실은 너무너무 삭막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없다”입니다. 무성치 못하고 없고 없으면 없을지라도... 여기에 등장하는 무화과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의 식물 양과 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산업을 총망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어느 한 가지가 어려우면 다른 것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완전한 흉년 완전한 침체입니다.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도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마음입니다. 전도자는 그런 믿음의 자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2. 고난의 시간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거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 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세상 모든 것이 없어지는 그날에도 없어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돈 있을 동안 함께 하는 것 아니고 건강할 때만 함께 하고 잘 나갈 때 함께 하시지 않고 세상 끝 날까지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믿음이고 하박국 선지자는 이 주님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되는 일 없는 현실을 극복합니다. 믿음이란 다름이 아닌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의 인격과 약속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입니다.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려도 아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도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도 심지어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도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유는 한 마디로 잘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은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누가 뭐래도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 앞에 매달리고 더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기도하고 보이지 않아도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주님을 향하여 팔을 뻗어야 합니다. 그러노라면 보이지 않는 것 같던 주님은 어느새 다가와 여러분을 일으켜주시고 오히려 정금같이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3. 믿음의 고난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가는 길이 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9).

모든 것이 다 잘 될 때에는 내가 마치 내 능력으로 내 부지런함으로 내 열심으로 사는 사람처럼 착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어려움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나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런 기회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살았던 우리에게 진정으로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 고난의 유익이고요. 이런 고난을 통해서 주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고 주님을 더 의지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경지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을 하박국은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힘드십니까? 얼마나 연약하십니까?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가장 약할 때가 사실은 가장 강할 수 있는 때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시고 그런 가운데 주의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그런즉 더 열심히 찬송하시고 더 기쁘게 예배하시고 더 기쁘게 감사하십시오. 그런 가운데 주님의 능력과 회복과 치유를 체험하시고 한 차원 더 높은 믿음의 경지로 성숙하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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