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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산 제물

로마서 12장 1-2절

이영섭 목사 (볼티모어교회 담임)

사도 바울은 로마인 교우들에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죄인된 육체만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뜻과 내 정성과 내 육체와 내 영혼까지 전부를 산 그대로 하나님께 헌납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단에 피와 죽음의 상징인 어린양의 제물과 그 외에 생축의 제물로 매일, 매주, 매달, 매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 인류의 죄를 몽땅 짊어지시고 어린양과 같이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그 사랑으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청산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로 죽었던 이 몸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사는 생활이 곧 산 제물로 나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요 곧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3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로, 제물은 흠이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번제할 제물은 흠이 없는 것으로 드려라”(레1:3). 제물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말라기1:8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눈 먼 것과 다리 저는 것, 절뚝발이, 병든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제물은 흠이 없이 깨끗해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빌4:18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어떻게 해야 흠이 없고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내 자신만으로는 흠 없고 깨끗한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서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깨끗하게 씻을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흠 없고 깨끗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 본 회퍼는 말하기를 “참 제자가 되려면 값비싼 은혜를 받으라”고 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를 흠없이 깨끗케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비싼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 내어 주셔서 물과 피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몽땅 쏟아 주셨습니다. 그 피 값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의 저주를 지불하시고 우리의 죽음을 지불하시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 피 값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속해 주셨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값을 치루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피 값으로 사셨으니 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레위기1:4절에 “번제물에는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여야 열납 되어 속죄될 것이니라”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예수님과 제물 되는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고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지 않고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흠이 없고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깨끗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진실은 만사를 쉽게 한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 성도는 자신에게 진실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다윗은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진실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실하고 깨끗할 때 하나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진실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흠 없고 깨끗한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성도는 자신을 흠 없이 깨끗하게 잘 보전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제물은 순종해야 합니다.

제물은 길들인 짐승을 드립니다. 결코 야생 동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쉽게 제단에 올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길들인 동물은 주인이 인도하는 대로 따릅니다.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삭은 처음에는 자기 자신이 번제의 제물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불과 나무는 준비되어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고 자기를 결박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제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반항하지 아니했습니다. 침묵으로 아버지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의 특성은 순종이었습니다. 이삭은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속죄 제물로 드리실 때 잠잠한 중에 순종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로 기도하실 때에도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100% 순종하는 피 어린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온갖 저주와 질고와 환난과 지옥에 갈 모든 독소가 들어있는 사망의 쓴 잔을 마시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생명까지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므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번제물의 소는 죽습니다. 죽일 뿐 아니라 가죽을 벗기고 또 각을 뜹니다. 다시 살아날 수 없게 죽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온 인류의 죄를 한꺼번에 담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때 로마병정은 정말 죽었나 알기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다시 살아날 수 없게 죽였습니다. 완전히 죽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심오한 교훈은 제물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지 않고는 제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죽여야 할까요?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인간의 정욕과 쾌락과 안일, 명예와 권세를 죽여야 합니다. 인간의 못된 성질, 교만, 욕심, 고집, 혈기를 죽여야 합니다. 고전15:31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큰 자랑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매일 매일 죽었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위대하게 쓰여졌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참 제물이 되지 못하는 것은 죽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주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묻혀버립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죽어진 제물입니다. 완전히 죽은 제물, 각을 뜬 제물입니다. 내가 죽는 만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습니다. 내 자아가 깨진 만큼 하나님 앞에 쓰여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이 길만이 개인이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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