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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고통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발견합니다.

사사기 13장 8-18절

진유철 목사 ( 나성순복음교회)

지금 이스라엘은 전체적으로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요단 동편은 동편대로 서편은 서편대로 부패하고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요단 동편은 암몬 족속의 지배를 받고 있고 서편은 블레셋 족속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힘도 없을 정도로 타락과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상황으로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삼손을 태어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1. 고통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삼손이 속한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지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제비 뽑아서 차지한 가나안 땅은 가장 강력한 적이 포진하고 있던 블레셋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무 강력한 상대를 만나는 바람에 아예 평지로 내려와 보지도 못하고 산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단 지파 가운데서도 ‘소라’라고 하는 작은 곳에 임신하지 못해 출산하지 못하는 ‘마노아’라고 하는 가정을 택하시고 삼손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마노아의 가정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은 신앙을 지킨 믿음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를 암흑시대라고 하는데, 암흑시대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쟁취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라도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을 당연하게 또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대가 사사시대입니다.

그러나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사는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침묵하고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는 믿음,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다 뜻이 있습니다. 성도는 여기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들의 이민생활이 때로는 정말 뚫고 나오기 힘든 누에의 작은 구멍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마치 나비가 작은 누에 구멍에서 날개 하나를 빼는 것과 같은 고역과 어려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그 구멍으로는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터널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후에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 훨훨 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날개에 영양분을 주는 과정입니다. 고통을 지나며 믿음의 날개에 힘이 생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더 깊이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믿음의 위인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귀중하고 풍요로운 자리가 어디였던가를 물어보면, 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발견한 그 자리가 가장 귀중한 자리라고 답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뜻하지 않은 고난 때문에 낙심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지금의 이 고난은 하나님의 소망이 잉태되는 귀중한 시간임을! (롬5:3, 4)

2. 고통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발견하는 믿음이 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애를 만나게 되면 초조해 하면서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방법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실 때는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믿음이 되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차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숙자와 같은 사람들은 기약도 없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표를 사서 손에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정신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냥 넋을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아시아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이 막았을 때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움직였습니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유럽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막히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막힐 때가 기다리며 기도할 때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에게 길이 열리면 순종의 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 앞에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이 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부활의 소망을 가졌고 결국 승리하였습니다. 기도를 통해 고통 가운데서도 소망을 발견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마노아도 주의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시28: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신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기도’라는 단어와 ‘승리’라는 단어는 항상 동의어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죄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이유의 뿌리를 찾아보면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복을 못 받습니까? 내 스케일이 작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의 틀이 변화되지 않고 안목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스케일을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다릅니다. 기도는 영적으로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해 줍니다. 렘33:2,3 밤낮 안 된다, 그래서 못 한다, 이런 게 잘못이다, 이제 끝장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못 받아들이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 초대교회는 얼마나 문제가 많고 핍박이 컸습니까? 그런데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과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행2:41, 42) 사도행전을 보면 28장 거의 매 장마다 승리를 기록하고 있는데, 공통점 다 기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난관과 어려움이 아무리 커도 기도하면 새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만큼 인간의 탁월함과 노력을 강조하는 시대가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도 나오고, 좋은 기술과 자격증도 많고, 이런 저런 엄청난 스펙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조롱을 받고 설움을 당하는 것, 세상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기회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기도를 소홀히 다루지 마십시오. 신앙생활 하다가 낙심하고 삐치고 봉사나 전도도 못 하고....... 공통점은 다 기도를 소홀히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예수를 믿었는데도 자신과 주변에 변화를 못 이루고 있다면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항상 영적으로 싱싱한 사람들은 기도에 인생을 건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닮기 원하는데 뭘 로 닮습니까? 옷이나 머리나 신발이 아니라 기도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기도하면 반드시 거룩해지고 능력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막11:24)

3. 결론으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고통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이기셨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새 역사를 이루는 기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스케일을 갖게 되고 거룩과 능력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우리의 가정과 사업 이민생활에 새 역사를 만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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