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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부활신앙

김종덕 목사 (뉴욕실로암교회 담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부터는 부활신앙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미국에 비참한 남북 전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죽게 됐습니다. 거기에다 기근과 전염병으로 시체는 쌓여만 갔습니다. 국민들은 죽음 앞에서 분노했습니다.

이 전쟁터에서 비극의 장면을 직접보신 로버트 로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계속 쌓이는 시체를 치우면서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지쳤고, 의식을 잃은 채 시체 속에 쓰러졌습니다. 며칠을 시체 속에서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 환상 중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로리 목사야, 너 거기 있느냐 내가 살아 있느니라. 내가 어둠을 이기고 살아났느니라. 내가 지금 네 속에 살아 있느니라” 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목사님은 눈을 떠보니 시체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는 용수철같이 튀어 올라 “주님이 사셨다 주님이 사셨다”고 기뻐 소리쳤습니다. 바로 이 감격 속에서 지은 찬송이 150장 찬송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덤 같은 절망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마음 중심에 모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놀라운 소망으로 채워지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여 우리의 신앙도 부활되고, 인격도 부활되고, 가정도 부활되고, 사업도 부활되는 역사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 여러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죽어도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며,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예수 부활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죽음을 이기는 권세를 주십니다. 거기 못 가둡니다. 죽음에 못 가둡니다.

부활의 권세는 생명의 권세입니다. 원수 마귀를 이기는 권세를 주십니다. (히2:14)“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부활주일을 지난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할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신앙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았던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제자들은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두 무릎이 낙타처럼 굳은 살이 박이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겁보에서 담대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남편에게 늘 구타를 당하면서 사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처음 결혼해서는 남편이 관심을 주었지만 조금 지나자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때렸습니다.

목사님에게 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말을 들은 목사님은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별거를 하였습니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달랐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도 싫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였습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소.” 그러나 부인은 옛날의 상처를 생각하여 매몰차게 거절하였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미련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차갑게 쏘아 붙였습니다. 남편이 정말로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쳤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불결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변화되었습니다.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상처만 치유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랜 병상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강력한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아더’입니다. 그녀는 책을 썼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처를 치유하신다”(한글번역판 ‘영적치유’ 프리셉트 출판사)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치유했을까요?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부활의 감동이었습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늘 아침에 만나길 바랍니다.

그녀의 인생의 전환점은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힘없는 예수님이 아니라 능력의 예수님을 만나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수치의 예수님이 아니라 치유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이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분입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1. 주님을 가장 사모하는 자였기에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녀가 주님을 가장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보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신 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주님을 간절히 찾아보십시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해 보십시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처럼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을 도저히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울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보고 싶어 찾는 분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2. 두려움 없는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안식 후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을 찾는 것을 보십시오. 얼마나 주님이 보고 싶었으면 어두울 때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무덤을 찾습니까? 사랑 앞에서는 정말 무서운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니까 보이는 것입니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해 보십시오. 부활의 주님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의 모든 두려움이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부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사명을 주시려고 만나 주셨습니다.

천사와 얘기를 마치고 난 후 막달라 마리아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몸을 돌이켜 보니 예수님이 서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모르고 그저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마리아야!”

평소에 자주 들었던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막달라 마리아는 즉시 주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서 소리쳤다. “랍오니여(선생님이여)”(16절)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17절 하 반절을 보면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주님의 부활하셨음을 형제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한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어서 상처받은 ‘케이 아더’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명자가 된 것처럼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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