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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를 사는 성도의 자세

베드로전서4:7-11
이종원 목사

(뉴욕새사람교회)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을 말세라고 하는데 이견이 없을 줄로 압니다. 하물며 성경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이 시대를 말세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과학자들도 곧 지구가 붕괴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아주 비정상적인 일들뿐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유를 알기 어려운 생물들의 죽음이 도처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있는 국가들이 있으며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국가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징조들만 봐도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정말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기정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세를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 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 주를 맞이하여 예비하신 혼인잔치에 모두 들어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는 일명 소계시록이라고 부르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께서 직접 구체적으로 잘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은 고통 하는 때가 이르는데 이 고통들이 말세에 우리 인생들이 영육 간에 느끼게 되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통이 무엇인가를 2절에서 5절에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들은 우리의 영육이 모두 당하게 되는 고통들이지만 특별히 영적인 고통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돈’을 사랑하므로 오는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로 압니다. 돈의 특성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중성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선한 돈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악한 돈이 되어 악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쓰이는 돈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선한 돈이 요, 반면에 마약같이 불의한 것에 쓰이는 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주는 악한 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인데 그 예로 수많은 신앙인들이 돈을 사랑하므로 믿음을 버리고 타락한 자들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십시오. 거의 모든 일들이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돈의 위력이 막강한 시대가 되었는데, 이것이 곧 마지막 때의 징조입니다.

둘째로 ‘자기를 사랑함’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타락한 이후로 자연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자신을 사랑하여 자신이 죄 값을 지지 않기 위해 하와에게 돌렸으며 하와도 자신을 사랑하여 뱀에게 자기의 죄를 전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시대는 이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남에게 사기를 치고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정도를 넘어서 남을 살해하는 악행이 세상 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욱이 천인공로할 일은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가족 간에 살인사건들이 자주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담한 사건들의 이면에는 자기 사랑이라는 마귀의 속성 때문임을 깨닫고, 자기 사랑을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므로 올바르게 사랑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한 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서 쾌락을 추구하거나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쾌락에 빠지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을 보십시오. 주 5일 근무 제도를 4일로 단축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해가고 있으며 그런 추세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더 많은 시간을 세상 재미에, 쾌락을 누리는 일에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점점 더 범죄의 소굴로 되어갈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은 쾌락에 빠져서 마약범죄와 성범죄가 차고 넘치는 가운데 요지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이러한 죄악에 물들지 않게 가르치며 자녀들을 지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넷째로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신앙인들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경건이 없는 신앙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참 신앙은 없고 그저 신앙을 액세서리 정도로 알고 믿으며, 신앙인이라는 축에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그냥 적당히 믿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들은 성령의 체험이 없으며 믿음이 주는 구원의 확신도 없고 죄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겉만 신앙인이지 실상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마귀가 쓰기에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들은 마땅히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마귀의 진을 파하는 강력한 경건의 능력으로 무장하므로 자신과 세상과 죄와 마귀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이제 본문을 통하여 말세를 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본문 7절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 구절의 핵심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기도에 힘쓰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성도로서 특별히 기도에 힘써야 할 이유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는 세상 사람들은 2천 년 전에도 마지막 때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일이 없지 않느냐, 그러면서 사람들을 겁주려는 유언비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지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므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시기 위해 길이길이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 말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아뢸 바를 올바로 아뢰라는 말씀입니다. 때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잘못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연약한 인생이요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지으시고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정신을 차려 올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습관으로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일을 빠트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듯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므로 그 능력으로 매일 매일을 승리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될 정도로 애쓰시며 힘을 다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인생들 중에 땀방울이 변하여 피 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렇게 기도하시지 않으셔도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힘쓰시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되는지를 행하심으로 본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세는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수 없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우리도 기도에 힘써 우리 후손들에게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 8절은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즉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행할 중요한 일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육정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거듭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께서 멸망당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신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가페 사랑을 체험하였고 우리 안에 그 사랑을 소유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도가 된 우리들은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6:14). 그러나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들이 용을 써도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감사로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은 말세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12절은 말세가 되면 불법이 성하여 사랑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매일 우리가 보고 듣는 소식들이 얼마나 처참하며 비참한 소식들입니까?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할 가정이 가족 간의 부끄러운 분쟁과 상상조차 힘든 혈육 간의 살인사건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로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의 자세를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죄악에 빠져 죄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주의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10절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왜 우리에게 귀한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을까요? 우리 자신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주의 일을 하라고 맡겨주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은사장인 고린도전서 12장은 9가지의 기적적인 은사와 28절에서 직분의 은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로마서 12장에서 섬김, 가르침, 권위, 구제의 은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주의 선물이므로 대단히 귀한 만큼 이 은사를 사용할 때 조심해서 사용하여 주의 일과 주의 뜻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는 자세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지기는 곧 교회의 직분을 맡은 우리들을 말씀하며, 서로 봉사하라고 했으니 교회를 섬길 때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지 말고 교회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여 신실하게 교회를 세우도록 힘쓰는 직분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대로 계속하여 주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해도 되겠다고 여겨지십니까? 아니면, 나중에 주님 만날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듣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누구나 주님으로부터 책망이 아닌 칭찬을 듣기를 원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의 종말이 언제가 될지는 우리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실상은 언제 우리의 종말이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의 종말을 맞이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무어라고 하실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지난날의 잘못을 만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남은 시간을 아껴서, 사도 바울과 같이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하늘의 상급을 향하여 열심을 다하여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hongwlee200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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