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새생명장로교회)
저는 오늘 "새 힘을 얻으리라"는 제목을 가지고, 오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과학, 정보, IT 산업 등등 모든 것이 발달하고 모든 것이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점점 살기 좋아지고 편해지면,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기쁘고 더 감사하고, 더 여유있게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행복하지 못하고, 더 기쁘지 못하고 더 감사하지 못하고 더 여유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게 살아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오늘 정작 믿는 성도들까지도 기쁨과 감사가 없이 힘을 잃고 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힘을 잃고 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왜 힘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위로부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에서 주는 힘으로 살아보려고 바둥바둥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야 날마다 성도답게 살수 있음에도, 자꾸 세상이 주는 힘으로 살려고 하니까, 한계가 있고,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이 힘을 잃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새 힘으로 살아야 성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럼 먼저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새 힘"이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아야 하겠는데, "새 힘"이라는 뜻은, 그저 어떤 "새로운 힘이 더해진다", "New power가 더해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바꾸어 입는 것 같이, "Renew their Strength, Restore"라는 뜻의 "낡은 것을 새것으로 완전히 바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면 "위로부터 하나님께 힘을 얻어서 우리의 연약하고 낡고 수고하고 무겁고 불편하고 힘든 모든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새 옷으로 바꾸어 입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희들이 어떻게 새 힘을 얻어서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 지금 이시간부터 습관적인 섭섭함과 불평과 원망을 멈추고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께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금방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본 구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이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를 보면, 이것은 그저 어쩌다가 한두 번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불평을 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즉, 하나님께 Complain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신실한 성도님들도, 계속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의 사정을 몰라주신다는 생각이 들 때처럼 괴로울 때가 없습니다. 또한 왜 나에게 이러한 어려운 일이 계속되는가?하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희들이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 이유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로 9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여정속에서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나는 섭섭함과 불평을 멈추고,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놀랍게도 위에서부터 임하시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같이 날아 오르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그 분의 생각과 우리들의 생각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나의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고, 때로는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깊은 절망속에 빠질지라도, 참된 성도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죽게 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죽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죽게 된 것 때문에 삽니다. 남들이 슬픈 일을 만나서 괴로워할 때, 우리는 그 슬픔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됩니다. 남들이 풍랑을 만나서 한 숨을 쉴 때, 우리는 그 풍랑 때문에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두 번째로,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9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되, 피곤한 자에게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 앞에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어놓는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위로와 새 힘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솔직히 내어놓을 수 있는 성도는, 오히려 사람이나 이 세상 앞에서 결단코 약해지거나 무능해지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사람들에게 들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잘 하는 것을 자랑하고 싶고 약한 것을 감추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습 이대로" 내 자신의 약함을 내어놓을 때에,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늘 충만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8절에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저희들은 수없이 듣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며, 위로부터 임하시는 새 힘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크신 하나님 앞에, 참으로 보잘것없는 내 자신의 실존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약점을 오히려 자랑하고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여러 약한 것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내게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 10절에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성도님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아멘!
진정 이 시대를 살면서, 늘 하나님 앞에는 겸손하게 솔직하게 약함을 고백함으로써, 늘 새 힘으로 세상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보시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앙망하다"는 뜻은, "집중하며 기다리다, 의지하다, 확실한 망을 가지고 바라보다"란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확신에 찬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바라보는 것도 슬쩍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고, 기다리면서도 딴 곳에 한눈팔지 않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경마장에 달리는 말을 보면, 눈 양 옆을 이렇게 가려 놓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0.01초라도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앞만보고 달려갈 때에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도 모르는 새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임하여 독수리 같이 날아 오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이 "독수리"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독수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왜 독수리를 "여호와를 앙망하는 성도"와 같이 표현했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1) 독수리는 힘의 상징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독수리는 때로는 완전히 죽은 것 같이 쓰러져 있다가도, 어느새 날개를 푸드득 하고 날으면, 유유하게 창공을 날아다닙니다. 아무튼 새 중에서 날개가 가장 강한 독수리가, 날개를 펴면 양쪽으로 2미터가 되는데, 독수리가 한번 날았다 하면, 약 4천 마일을 아주 유유히 날아간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켈리포니아의 길이가 2천 6백마일 정도 되니까, 그 조그만 독수리가 양쪽을 날개를 펴고 힘차게 한 번 나르면, 멈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2) 독수리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여덟 배를 더 잘 본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만큼 목표를 향한 집중력이 강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독수리는 눈도 좋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이 강해서 수직으로 내렸다가 수직으로 뜰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3) 30절에 보시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럭무럭 자라는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특별한 일을 위해서 뽑힌 튼튼한 군병들도 얼마든지, 피곤하고 넘어지고 자빠질 수 있는, 인생의 연약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위로부터 새 힘을 얻게 되어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도, 이러한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새 힘이 넘쳐서, 우리의 연약함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바뀌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성도의 최고 가치있는 것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면 달려가면, 모든 것이 형통한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 성도들은 한 번뿐이 없는 이 짧은 인생을 사시면서 늘 영적 육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하루를 살아도 늘 기쁘고 즐겁게 빛을 발하며 소금의 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축복은,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섭섭함과 불평을 없애고 감사함으로 바꾸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부족하고 연약한 내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겸손하게 솔직하게 구하면, 다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오직 한가지,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 위로부터 새 힘이 임하여 독수리같이 날아오르는 멋있는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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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