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교회, KAPC 남가주노회 노회장)
다윗은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광야의 사진을 보시면 아주 황량한 곳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고요하고 적막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다윗이 저 광야에서 양 떼를 쳤으니 광야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잘 알고 있었겠습니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사울 왕에게 요청할 때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이라고 하며 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광야에서 믿음을 키웠던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다윗이 골리앗을 쳐 죽이고 난 후에 영웅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였고 결국 다윗은 군대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온 백성도 이를 합당하게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출 때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고, 사울에게 악령이 임하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두 번이나 피했습니다.
사울이 자신의 힘으로는 안되자 블레셋의 힘을 빌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딸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어 부마를 삼고 전쟁에 내보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블레셋을 무찌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고 외쳤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광야로 도망을 다닙니다. 왜요? 광야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와중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사무엘상 18:12)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는 살아도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사데 교회에게 경고하신 대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는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첫째, 엔게디에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절을 먼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다윗은 공로를 많이 세웠지만 사울의 질투심은 높아만 갔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집으로 가서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도피하여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얘기했고 사무엘이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갔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다윗을 라마 나욧까지 추격하였습니다.
다윗이 이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놉으로 갔다가 그곳도 안전하지 못하여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에게 망명하고 맙니다. 그런데 아기스 신하들이 다윗을 의심하니 다윗이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치광이인 체하며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곤 아둘람 굴로 피신합니다. 그때 다윗을 지지하는 400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제가 가보니 아둘람 굴이 상당히 넓습니다. 이런 굴이 한 군데가 아니라 그 주변에도 많습니다. 이후에 다윗이 그일라를 침략한 블레셋을 물리치고 나니 600명으로 추종자가 늘어났습니다. 사무엘상 23장 14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승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십 광야 수풀에 숨었을 때에 십 사람들의 고발로 다윗 일행이 마온 광야 아라바로 갔다가 그리고 엔게디 광야로 숨게 됩니다. 여태까지는 험한 계곡에 있는 곳이었지만 엔게디는 산지로 엄청 더 험한 곳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곳에 있는 동굴에 사울이 낮잠을 자다가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를 죽였을 터이지만 다윗은 옷자락 벤 것으로도 마음에 찔렸다고 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엔게디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노래합니다. 고난은 받아도 결코 해를 당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종종 고난이 닥쳐도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음으로 늘 감사와 찬양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이 없는 마사다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헤롯대왕은 대단한 정치력을 가지고 로마 황제가 임명하는 이스라엘의 분봉왕이 됩니다. 그러나 순순한 유대인이 아닌 혼혈인이었기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증축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 일어날지 모를 쿠데타가 두려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과 동쪽과 북쪽에 도피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중 남쪽에 마련해 놓은 도피처를 마사다라고 부릅니다.
마사다는 사해 서쪽해안에 위치한 천혜의 절벽요새입니다. 높이 400m, 정상은 길이 600m, 폭 250m의 평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사다는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 최후의 비극적 격전지로 유명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들은 4년간, 여자들은 2년간 의무 복무하는데 바로 마사다에서 훈련을 하면서 애국심을 고취시킨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제국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오자, 열심당원 약 960명이 마사다 요새로 피신하여 로마에 대한 저항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무려 3년을 버텼습니다.
마사다의 험난한 지형 때문입니다. 그래서 티투스 장군은 가장 낮은 동쪽에 엄청난 토담을 쌓아 올려 결국 3년 만에 마사다 요새를 점령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미 전날 960명 전원이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로마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자유인으로서 영광되게 죽기를 결심했다고 7명의 생존자가 증언했다고 합니다. 마사다에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목욕탕, 물저장소, 곡식 저장소 등등 사람이 살 수 있는 물품들이 넉넉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38절에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그래서 그들의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황폐한 인생이요 결국에는 버려지는 것입니다.
셋째, 생명이 살지 못하는 사해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흔히 듣기로는 사해에서는 부력이 높아 그냥 몸만 뒤로 젖히면 둥둥 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닷물이 눈과 코와 입에 들어가지 말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뒤로 누웠더니 둥둥 뜨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누가 크게 소리를 치는 바람에 눈과 입에 동시에 바닷물이 들어갔습니다. 저는 사해의 바닷물이 그렇게 짠지 몰랐습니다. 손으로 눈을 씻을 수도 없어서 눈물이 자연스레 바닷물을 닦아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해의 주변에는 마사다가 있고 엔게디도 있습니다. 그리고 쿰란은 북쪽에 있습니다. 사해는 유대 광야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고 크기는 남북으로 67km, 동서 방향으로 18km에 걸쳐있는 엄청 크지만 완전히 폐쇄된 바다입니다. 또한 해저 421미터로 지표에서 가장 낮은 곳이라고 합니다. 사해는 응고된 소금 덩어리가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소금층은 두껍고 단단하며 날카로워서 반드시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사해는 소금 바다를 뜻합니다. 사해에서는 염도가 대단히 높아서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수초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소금 덩어리만 보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사해 소금의 효능을 극찬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사해는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은 바다입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속으로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죽어있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장 12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롯의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유황불로 멸망당하는 소돔성에서 탈출은 했지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누가복음17장32절에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라고 했습니다. 뒤의 것을 잡으려고 돌이키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결국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은 망합니다. 지금은 떵떵거릴지 몰라도 인자가 오시면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제가 다녀온 3군데 장소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엔게디와 마사다와 사해바다입니다. 장소에 따라 하나님이 있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과연 함께 하시는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 삶에 개입하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너를 모른다’라고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심으로 늘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 가시길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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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