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교회 원로목사)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사건이 일어나기 약 4개월 전에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베다니라고 하는 마을에 사는 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 친히 그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가 예수님을 뵙고는 하소연했습니다.
“예수님! 제 오라비가 죽을 때,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었다면 제 오라비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거예요”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21절). 그리고는 “이제라도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실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22절). 즉, “예수님께서 늦게 오시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예수님께서 나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라는 말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23절). 세상 끝날 때 이루어질 부활이 아니라 그 당시 바로 그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지 3일이 지난 사랑하는 오라비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려주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소식이었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의 예상과는 달리 마르다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니까,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라비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세상 끝 날에 있을 부활에 관한 이야기로 알아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물으셨을 때는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은 했지만, 정작 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당장 부활의 능력을 베푸실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이처럼 자신이 방금 고백했던 그 고백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 나는 부활이고 생명인데, 그래서 나를 믿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설령 죽는다 해도 살 것이고, 또한 (영적으로)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절대 죽지 않을 것인데, 너는 이 사실을 믿느냐?”라는 질문을 넌지시 하십니다(25-26절). 그러자, 마르다는 기다림도 없이 또다시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볼 대목은, 예수님은 마르다의 여동생 마리아에게는 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유독 마르다에게만 이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39절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막상 나사로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취하려고 하자, “주여 오빠가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지금이라도 예수님은 나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려 주실 줄로 믿는다고 고백했던 마르다의 고백은 진실한 고백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단지 예수님 듣기 좋으라고만 고백한 고백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마르다의 고백은 실상은 말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마르다였지만, 그녀의 고백은 실상 빈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입으로만, 통속적으로, 형식적으로만 고백한 대답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부활과 생명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입으로 고백은 했었지만, 정작 현실 속에서는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신앙 따로, 현실 따로, 믿음 따로, 생활 따로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모든 능력의 원천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서 당장에 창조와 회복의 능력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슬픔을 해결해 주시려고 했지만, 막상 도움을 받아야 할 찰나에 마르다는 현실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머리와 가슴속으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 믿음의 고백을 확신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 고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신앙적인 체면과 위신을 위해서 하는 믿음과 확신의 고백은, 작정하고 마음만 먹으면, 의도적인 말로는 얼마든지 번지르르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르다처럼 신앙 따로 현실 따로 살아간다면, 여러분도 마르다처럼 예수님 앞에서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길 이 시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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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