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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서 살다가 미친 그대로 죽자

(고린도후서 5장 13절)

김기원 목사 (장위제일 교회 원로)

돈키호테의 글 중에 "미쳐서 살다가 제 정신으로 죽다"는 문장은 그의 삶을 기가 막히게 요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의 그의 삶은 "미쳐서 살다가 미친 그대로 순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는 그의 생의 최후(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성경의 암시적 내용이나 교회사의 기록에 의하면 '네로 황제'의 박해에 의해 순교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바울 사도의 순교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가 없습니다. 미쳤다는 말은 정신이상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의 표현은 "자기가 하는 일에 전적인 열정을 쏟아 붓는 삶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의 주어진 일에 그 어떤 분야이던, 그 일에 완전히 몰입되고 거기에 빠져 버린 삶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마니아가 되려면 그 일에 전념하고 빠져 미쳐버려야 됩니다. 그러나 본문에 복음 때문에, 선교 때문에 미쳤다는 것은 마니아가 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닙니다. 마치 술에 중독되고 노름에 중독되고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바울 사도가 예수를 만난 체험 이후부터는 예수에 빠지고 복음증거에 빠져 오직 그 한 가지 사명 때문에 육신이 요구하는 것만큼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생명 걸고 밤낮없이 복음증거에 열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중독이요 복된 마취요 가난뱅이가 보화를 발견하게 된 기쁨보다 더한 사건이요 대대박이요 기적이요 발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깨닫고 성령충만함 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도취되면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시각으로 볼 때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미친 자이지만 미칠 바에야 제대로 미쳤으면 합니다. 우리가 작가가 되든 화가가 되든 예능인으로서 활동하든 아니면 어떤 운동을 하든 사업을 하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에 그 속 목적, 그 중심목표에 미쳤으면 합니다. 잠간 미치는 것은 발작이지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에 좌우된 사이비 충성이나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은혜에 사랑에 완전히 빠지고 사로 잡혀야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변함없이 사나 죽으나 미친 대로 살다가 미친 그대로 죽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주적인 작품도, 상상 못할 역사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제가 거창한 광고에 속아 두꺼운 책 두 권(상하권)을 상당한 가격에 카드구매를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도 잘 되어 있고, 광고 문구도 호객당할 문장이 동원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권을 다 읽어도 밑줄 그을 만한 내용이 나오지 아니했습니다. 이유는 내용이 내가 볼 때는 그렇고 그랬습니다. 새로운 것도, 특별한 것도, 독특한 시각이나 표현, 또는 뜨겁게 공감대를 일으키는 내용도 내게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하권을 또 읽었습니다. 절반을 읽어도 지루하기만 했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계속 읽었습니다. 드디어 밑줄 그을 내용이 딱 한줄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책값은 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자라면, 적어도 크리스천은 밑줄 그을 내용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임은 물론이고 자기와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많이 읽혀지는 시 중에는 긴 이야기나, 삼라만상을 짧은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생각과 감성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룻밤에 자란 콩나물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가 되겠습니까? 삽질 한번해서 펑펑 솟아나는 물이 생수이겠습니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기초공사가 쉽고 시간도 돈 투자도 적지만 쉽게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3년 현장 사역을 위해 30년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40년 지도자로 쓰시려고 80년을 준비시켰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은혜는 받았지만 잠간 미치고 제 정신이 돌아와 사역을 중단하고 15년이 흘러갔습니다. 15년 만에 다시 신학교 4학년에 복학하여 33년의 사역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미치지 못해 제 정신만 돌아오면 하기 힘들고 때로는 싫기도 하지만, 미치면 생명 걸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날마다 구하는 것입니다.

"가다가 지쳐 쓰러지면 주 이름 부르겠네“ 제가 계속 문서선교 차원에서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기도 하지만, 미치지 아니하면 중단하게 됩니다. 이제 완전히 미치고 싶고 발작이 아닌 미친 그대로 복음 위해 살다가 복음 위해 죽기를 원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없다고 하지만, 성경은 복으로 시작하여 복으로 마치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구약은 보이는 현세적인 복이 많이 나옵니다. 마태복음에는 심령의 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영적인 영원한 복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복 종교가 아니라 완전하고도 영원한 복을 약속받고 그 약속 때문에 오늘부터 지금부터 행복한 소망의 삶을 살게 하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이는 복으로 보이지 않는 복을 깨닫게 하고, 불완전한 복에서 완전한 복을 믿으며 살게 하고, 일시적인 복에서 영원한 복을 바라보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다이어 반지를 낀 자는 구리반지를 낀 자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마치 금 100kg을 지고 가는 것과 돌 100kg의 무게는 같은데, 금 100kg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같이 편안한 행복보다 고단한 행복을 체험하는 것은,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기쁨 때문인 것입니다. 복음을 깨닫고 발견한 미침은 행복 중 최고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8시간 책상에 앉아 글만 써본 경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새로운 깨달음과 생각을 주시는 대로 정신없이 써내려 가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른팔의 마비증세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재발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돈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의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15년간 약 3천 목회자들에게 자비량으로 문서선교, 목회 자료를 제공했고, 60여 개국 목회자와 선교사들에게도 수년간 발송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부친은 죽을병에서 전도 받아 고침 받고 오직 예수, 오직 목사님, 오직 교회, 오직 순종, 오직 기도밖에 모르며 92세까지 장수하시다가 담임목사님 모셔서 예배드리고, 자신이 즐겨 부르시던 찬송을 두 번 부르시고, 목사님 앞에 천국가시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드리고 먼저 가셨습니다. 예수에 미쳐서 살다가 미친 그대로 죽었습니다. 아니 하늘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책상 위에 펜대를 잡은 채, 혹은 성경을 읽다가, 혹은 기도하다가 부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의 하는 일에 몰입하고, 열정을 다하므로, 날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길이길이 남을 인생, 무엇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 되고 싶지 않습니까? 너무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쬔 불은 곧 식어집니다. 내 불이 아닙니다. 그러나 붙은 불은 기름만 보충하면 계속 붙어 있습니다. 쬔 불은 전달이 안 됩니다. 그러나 붙은 불은, 작은 불이라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내 가슴에 불이 붙어 있어야 내 불이고, 전달도 가능합니다. 남의 간증을 전달하는 것보다, 자신의 간증이 더 확신이 넘칩니다. 카피, 모방보다, 내 가슴에 붙은 불을 전달합시다.

사도 바울처럼, 사도행전 20:22-24에 보면 그는 말씀에 사로 잡혔습니다. 성령에 사로 잡혔습니다. 은혜에 사로 잡혔습니다. 사명에 사로 잡혔습니다. 전도 환상에, 생명 구원에, 복음 전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고난도 참았습니다. 역경도 이겼습니다. 장애도 극복했습니다. 핍박도 당했습니다. 눈물로 전도하고, 교회가 말씀위에 든든히 서 가기를 기도 했습니다(행20:19-31). 그는 예수를 아는 지식에 빠져 (미쳐)버렸습니다(행26:24-29). 그는 예수 십자가 복음 증거에 생명(미쳐)을 걸었습니다. 그는 예수 부활 복음 증거에 도취되어(미쳐)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에 메인 바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열심은 사랑에 감동 되고, 도취된 충성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조건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입니다. 고후6:3-7에 고백하기를 복음 때문에 인내했습니다.

환난, 핍박, 궁핍, 매 맞음, 갇힘, 분주함, 수고, 자지 못함, 배고픔, 옥에 갇힘,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욕을 당했습니다. 그것뿐 입니까? 고후11:23-27에 보면,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세상적으로 보면, 그의 스펙은 하이클래스입니다. 남부럽지 않습니다.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때문에, 다시 말씀드린다면 즉 선교와 전도에 미쳐서, 사명에 미쳐서, 생명 구원에 미쳐서, 바로 가르치는데 미쳐서,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옥에 여러 번 갇혔다는 사실입니다. 매를 수없이 맞았습니다.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9대식 다섯 번 맞았습니다. 그래서 완전 실신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23-24).

세 번은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태장은 가장 고통당하게 제작한 고문용 도구입니다(25). 한번은 돌로 맞았습니다(25). 바다에 파선으로 죽을 고비를 세 번 당했습니다(26).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을 당했습니다(26).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도시와 광야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거짓 형제들의 위험도 당했습니다. 여러 번 자지 못하게 하고, 주리고 목마름을 당했습니다.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27). 여러분, 이것 인간적으로 볼 때 정상입니까?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계속 반복하기를 "고난은 은혜"라고 외칩니다. 십자가를 축복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도, 즉 옥에 갇혀 연명 중에 있으면서도, 계속 "기뻐하라, 기뻐하라, 기뻐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외칩니다. 교훈합니다.

제 정신으로는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칩니다. 고후6:8-10에 ‘나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한 자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다.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는 자다. 징계 받는 자 같으나 상 받는 자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이것이 거룩하게 미친 자, 영적으로 미친 자, 복음에 미친 자, 사명에 미친 자, 전도에 미친 자의 고백이요, 외침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배설물(똥)로 취급한다고 했습니다. 8일 만에 할례를 받아도 예수 모르면 똥보다 못하다. 이스라엘 선민이라도 하나님 잘못 믿으면 똥이다. 베냐민 지파, 족보 자랑하고 뽐내도 예수 안 믿으면 똥이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도 예수 제대로 못 믿으면 똥이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도 형식적으로 믿으면 똥이다. 율법적으로 완전해도 복음 모르면 똥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최고의 가치요, 예수가 너무 너무 좋아 다른 것은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미친 자는 절대 교만하지 않습니다. 미친 자는 세상의 말에 동요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 준비 중에 상품권 선물 받은 것을 가지고 마트에 갔는데, 어머니 따라 비대한 미친 딸이 따라 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비대한지 머리부터 발까지 퉁퉁 부은 환자 같았습니다. 그런데 큰 빵 봉지 하나를 들고 정신없이 먹으며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먹으라고 어머니가 호통을 쳐도, 의자에 앉아 있으라 해도, 자기 엄마만 졸졸 따라 다니면서 정신없이 먹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오직 따라가면서 먹는 것에만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보기를, 아! 미치면 저렇게 되는구나.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다른 사람 의식도 않고, 오직 자기가 하는 일에만 열중하듯이, 예수에 미친 자는, 사명에 빠진 자는, 오직 주님만 따르고, 주님이 좋아하는 일에만 열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모두 멋지게 미쳐서, 멋지게 삽시다. 어차피 미쳐야 사는 세상, 예수 때문에 미치는 것 가장 잘 미치는 것입니다. 제 정신으로는 예수 잘 믿기 힘들어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아까워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하기 싫어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싫증나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쉬고 싶어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방탕하고 싶어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화나요, 신경질 나요. 힘듭니다. 견디는데 한계가 있어요.

어떻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해줍니까? 삼세번도 힘든데. 어떻게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 댑니까? 어떻게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가줍니까? 어떻게 고가의 옥합을 깨트립니까? 정 그렇다면 장학제단에 기부하지. 다시 강조합니다. 제대로 미쳐야 살맛납니다. 제대로 미쳐야 살아남습니다. 제대로 미쳐야 담대합니다. 세계 여론이 "한국사람 미쳤네" 할 때 가장 고속 성장한 때입니다. 사랑하는 조국 동포 여러분! 사랑하는 크리스천 여러분! 미치도록 사랑하고, 미치도록 기도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 마지막 때 믿음 지키고, 물질만능 시대적 흐름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kkiwon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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