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성경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풍성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곳은 창조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창세기 1장과 2장일 것이다. 성경의 처음 두 장은 선하시고,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인 사람들을 위해 창조하신 세상일 뿐 아니라 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주 다른 특별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창조주간 둘째 날만 제외하고 매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붙어 있다. 과정도 좋았고 결과도 좋았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날에는 ‘좋았다’는 표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날 뭍이 드러나자마자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좋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대지에 식물들을 종류대로 나타나게 하셨을 때 또 다시 ‘좋았다’고 말씀 하셨다. 셋째 날에만 두 번씩이나 ‘좋았다’고 하셨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장면들을 보면, 땅에 빛을 비추는 천체들이 좋았고, 물 속 생물들과 날개 가진 생물들이 좋았고, 땅 위의 각종 동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창조의 목적은 지구에 창조자의 형상이 살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사45:18) 주로 땅과 직접 관련이 있을 때에만 좋았다고 하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둘째 날의 궁창은 지구의 일부이긴 하지만 물과 물 사이에 있어 사람이 직접 밟고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아무튼, 창조가 끝났을 때 우주는 가장 완벽하였다. 이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과학 법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물질에 관한 모든 법칙들 중에 가장 확실한 법칙인 열역학 제 1 법칙에 의하면 물질(에너지)은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기적이 없다면 물질은 없다. 따라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질들은 기적을 통해서 즉 성경의 하나님의 창조의 기적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면 모든 질서는 점점 파괴된다. 그렇다면 과거로 갈수록 점점 더 완벽해져야 하고 처음이 가장 완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조가 끝났을 때 세상은 가장 완벽했던 것이다. 성경은 바로 그 완벽한 상태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완벽했던 창조 세계는 아담의 타락과 더불어 열역학 제 2 법칙에 따라 무질서해지기 시작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심판 사건인 노아홍수 때 더욱 급격하게 파괴되고 말았다(벧후3:6). 성경의 기술은 이 열역학 제 2 법칙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더 복잡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진화는 이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장이다.
처음 창조된 세상은 물질적으로 완벽한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 2 법칙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무질서해지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제 2 법칙에 의하면 모든 것은 점점 파괴될 것이므로 창조 당시에 그 상태가 아무리 완벽했다 해도 결국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 묘미가 있다. 제 2 법칙의 결과로 파괴되거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 영향력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의 근원인 창조자 하나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창조된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만 완전한 세상이었지 창조자 없이 세상 자체만으로 완벽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이 진정 사랑의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가 아닐까? 그냥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속적인 공급과 세밀한 조절이 필요한 우주인 것이다. 그 창조자는 지금도 그 세계를 보존하고 계신다(히 1:3).
창세기 2장 4절부터는 하나님 이름에는 여호와(LORD)라는 호칭이 하나님(God) 앞에 덧붙여 있다. 창세기 2장은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형상, 사람을 창조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창세기 1장의 부연 설명이다. 여기에 사람과 창조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여호와(LORD)가 개입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LORD)이시지만 사람에게만은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셨다. 사람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인으로 여기고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에게는 자기와 같은 성품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자기가 주(lord)가 되어 타락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회개한 사람이 아니고 당연히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되는지 욥을 통해 한 예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허용하시고 욥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욕하지는 않지만 창조된 자신을 기뻐하지 않고 불평하였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무섭게 나타나셔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통하여 욥의 위치를 깨닫게 하신(38-41장). 그때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게 되는데 바로 피조물 본연의 위치로 돌아간 것이다(욥42:1-6). 이때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갑절로 부어주신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인간의 본래 위치, 즉 창조자 하나님과 우리의 주종관계(LORD-slave relationship)가 재정립된 사람들이다. 창조자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다시 얻은 사람들의 주인과 왕이 되시기를 원하신다(요13:13; 18:37). 그러나 그 주인은 선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으신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얻은 사람들을 자기의 백성이라, 아들이라, 신부라, 친구라 부르시는 분이다. 그런 자기의 형상들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완벽하였다. 처음이 가장 좋았다! 그 분이 준비하신 오는 세상도 흠이 없이 완벽할 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할렐루야! 이메일: mailforw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