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목사 (복음장로교회)
18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애서의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밤낮으로 보호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해주셨고, 밤에는 그 넓고 넓은 광야를 화강암 불로 밝혀 주셔서 동물들의 위협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아침에는 만나를 비같이 쏟아 부어주셔서 그 많은 백성들이 매일 거두어서 먹을 수 있도록 채워주셨고, 어떤 때는 메추라기들을 몰아 붙여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조금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고 살았습니다. 원망하며 낙심하고 살았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사람의 본체는 다 똑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 보호하심, 인도하심 속에 살았던 것보다 더 큰 기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때보다 훨씬 풍족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엄청나게 부어주셔서 물 쓰듯 쓰고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넘친다”는 감사보다는 오히려 “아이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구나, 걱정이 태산이다” 하며 삽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에게 천국을 가져다주어도 또 불평불만하며 없는 것만 계산하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버지가 건강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일터, 일할 수 있는 재능, 일하는 가운데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시며, 안전하게 운전하도록, 밤에 잠잘 때 아무 의식 없이 잘 잘 수 있도록 호흡을 지켜주시고, 심장을 뛰게 하셨으며, 무서운 도적과 강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 이 모든 것 전부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광야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나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데 우리의 감사는 바닥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저 없는 거, 부족한 것만 계산하는 이 모습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문제는 우리 사람이라는 존재입니다. 천국에 갖다 놓아 보아야 첫날만 감사하고 이튿날부터 불평할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의 그 넓으신 사랑, 하나님의 그 크고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도, 심지어는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까지 가도록 은혜를 받고도 울상을 하고 이 세상을 산다면 우리는 너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쓸모없는 우리 인간을 구원해주시려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입니까? 왜 우리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궁핍하게 웃지도 못하고 염려 가운데서 살고 있을까요? 그 답이 30절에 있습니다. “저희가 그 욕심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욕심이라는 박테리아 하나로 인해서 만족이 없고 불평, 또 불평합니다. 우리는 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달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조금만 하시고 감사 기도를 많이 해야 실제로 부자입니다. 감사를 해야 자기 것이 됩니다. 감사를 해야 삶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다 예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열심히,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이 다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을 감사하면서 삽시다. 우리 성도들은 감사하며 사는 것이 복이요, 특징입니다. 욕심의 종이 된 사람은 아무리 주어도 부족합니다. 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인데 감사하면서 인생을 삽시다.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내 생애를 책임지신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염려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라.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