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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킵시다

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하다가 예루살렘에 왔는데 거기서 유대인들에게 억울하게 체포당했다. 자주빛 옷을 입고 왕관을 쓰고 근엄하게 앉아있는 아그릿바왕과 진홍색 옷을 입고 번쩍거리는 훈장들을 달고 앉아있는 베스도 총독 그리고 그 옆에 많은 고관들이 쫙 배석해있는데 죄수복을 입고 쇠사슬에 묶인 바울이 그 앞에서 서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여기에 있는 많은 고관들에게 전도할까?’하고 그들을 향해서 전도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심문을 받으면서도 틈만 있으면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뵈었는지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예언들이 예수님의 생애에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을 당당하게 설명해주려고 한다. 예수님의 부활과 그 십자가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하고 있는데 베스도가 벌떡 일어나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네가 미쳤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제가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아그릿바 왕이시여! 선지자를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을 압니다’하고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아그릿바왕이 “네가 적은 말로 권하여 나를 그리스도인 되게 하려하느냐?’하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한다. 이때 바울이 유명한 말을 했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 앞에 왕이 앉아있고 총독이 앉아있고 고관들이 위엄 있는 자세로 앉아있지만 그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더 행복하다는 바울의 긍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자기 양심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양심의 소리를 거부한 적이 없고 그래서 바울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양심 앞에 떳떳하다는 말이다. 진실은 언제나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1614년 옥중에서 ‘세계사’라는 책을 쓴 영국의 월터 롤리경이란 분은 투옥된 그 죄목은 국가내란음모죄였는데 엘리자베스 1세 때는 국가에 공을 세워 나이트 작위를 서임 받았었던 분으로 군인이며 탐험가였다. 옳은 일에는 항상 목숨을 걸고 모험을 했다. 그런데 1616년 출옥한 후에 탐험으로 생애를 보내다가 다시 투옥되어 처형됐다. 사형집행 전 집행관이 “좀 편히 죽기를 원하면 이 단두대 위치를 교정시켜 주겠다”고 하자 그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친구여, 양심만 바로 놓여있다면 머리를 어떻게 놓든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했단다. 양심이 바로 된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많이 있지만 이성과 종교성 그리고 양심 이 3가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이성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사물을 보고 나름대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의 과학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능력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이루어 놓은 축복이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종교심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 오늘날 인간의 존엄성과 그리고 인간의 정신문명은 바로 이 종교성이 이루어놓은 축복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양심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은 선과 악을 마음으로부터 식별하면서 살아간다. 오늘날 모든 도덕이나 윤리의식 같은 민주주의의 질서는 이 양심이 이루어놓은 결과이다. 인간에게 이성과 종교심 또 양심이 없다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인간다움이란 바로 하나님이 태어날 때 사람에게만 주신 이 세 가지, 이성과 종교심과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보라! 사람마다 양심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다.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양심있는 사람이 도리어 바보로 통하는 사회에서 산다.

그러나 재물이 많이 있어도 양심과 신의를 잃어버렸다면 사실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믿는 우리 성도들 중에도 양심을 버린 사람들이 많다. 진실을 잃어버렸다. 양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그래서 당당하지를 못하다. 자기 양심을 버리면 당당함도 마음의 긍지도 없다.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그 신앙이 파선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아무리 험악한 세상을 살아간다 해도 성도의 긍지는 언제나 양심과 함께 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 내 양심 앞에 자유로워야한다. 이민생활이 아무리 험악해 갈지라도 끝까지 양심을 지켜서 그 속에 긍지를 품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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