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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게 살지 말자!

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당대에 성인이라고 인정받는 토마스 주교가 영성수련을 위해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산에 올라가 말씀묵상과 기도에 힘쓰고 있었다. 그때 사탄의 부하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그 기도를 방해해하기로 하고 그를 시험에 빠뜨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맨 먼저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배고픈 주교를 유혹했다. 그러나 끄떡도 안했다. 그 다음에는 의심, 공포, 육욕, 물질, 명예 등으로 유혹을 했지만, 기도로 무장된 주교를 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금식기도를 중단하면 대주교가 되게 해주겠다고 유혹을 해도 넘어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부하들은 사탄에게 찾아가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사탄이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한번 해보지’하더니 토마스 주교에게 접근해 귓속말로 뭔가 한 마디를 하자 토마스 주교의 안색이 금새 울그락불그락 하더니 금식기도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산을 아예 내려가버렸다. 너무도 쉽게 성공하는 모습을 본 부하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주교가 금식기도까지 중단했을까? 그때 사탄이 대답했단다. “간단하지! 다만 나는 한 마디만 했네. 자네 친구 요한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가 되었네! 라고 말했지.” 주교의 마음에 질투심이 끓어오르게 하는 유혹이 성공한 것이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사도바울을 선언한다.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이 있고 또 지식과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내어 구제해도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긍정적인 표현으로 선언하더니 오늘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표현으로 선언한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깃들기 쉬운 시기와 질투심을 경고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한다고 하는 세속적인 논리가 통하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사랑과 질투가 서로 반대되는 것임을 말한다.

질투와 시기를 하나로 묶어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다고 번역한 성경도 있다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와 시기를 이렇게 구분해서 설명했다. 질투란 이웃이 지닌 것을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을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란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을 슬퍼하는 것이다. 질투는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왜 저 친구에게는 있는데 내게는 없지? 라고 물으며 무게 중심을 자신에게 둔다. 그래서 질투는 때로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경쟁심을 유발하여 열심을 내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기는 초점이 상대방에게 있다. 동료에게 있는 어떤 좋은 것을 보면 단지 그 사실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시기는 늘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그저 친구가 잘되거나 좋은 것을 지니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 불편해 하는 마음이다. 따라서 시기를 받게 되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자신은 상대에게 어떤 해악을 가한 적이 없는데 단지 상대방의 시기 때문에 함정에 빠지거나, 일방적인 험담과 소문, 중상과 같은 화살을 맞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한 시기는 온통 신경과 시선을 상대방 혹은 경쟁자에게 두어서 자기의 직무에 몰입하거나 전문성을 계발하는 것에 써야할 건설적인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낭비함으로 자신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만다. 내 영혼을 죽이는 질병 2가지 하나는 교만이고 다른 하나는 질투이다. 시기하는 마음은 병든 영혼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인류 최초살인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시기와 질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도 시기심에 가득 차 있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다. 예수를 재판할 때 당시 총독이었던 빌라도에 대해 성경은 “기록되었으되 이는 그가 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니라라“(막15:10) 했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 시기와 질투이다. 그런데 이 질투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는가? 바로 사람의 죄성이다. 갈5:20 the works of the flesh is evident such as jealousy 즉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즉 질투하는 것이라고 했다.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은 다 질투한다. 타락한 사람의 자연적 리액션(reaction)이다. 죄성을 가진 사람의 자연적 반응이다. 질투는 우주적 감정의 트라우마다. 남녀노소 신자 불신자가 간에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다. 단지 어른은 표시 안 나게 점잖게 꾸며서 나타날 뿐이다.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죄성 그 질투심이 없는가? 당신은 그 질투심을 어떻게 다스리고 사는가? 그런데 질투는 내가 의식적으로 결심해서 시작하는 것 아니다. ‘질투하겠다’는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내 가슴속에서.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질투 많이 하는 사람치고 마음 넓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굳게 다짐해야 한다. 속 좁게 살지 말자! 속 좁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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