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충청도 부여 제 고향에 아주 유명한 부자가 하나 있었는데 술을 만들어 파는 양조장을 했었다. 그 사람은 돈을 버는 일이라면 염치도 체면도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했던 반면에 아무리 가치 있고 명예로운 일에도 돈은 쓰지 않는 소문난 부자였다. 친구가 어려워 도움을 받으러 가면 자네 돈 주려고 내가 돈을 버는 줄 아나 그러고 얼굴을 돌렸고 동네 이장이 찾아와서 비만 오면 끊어지는 다리를 놓으려고 하니 조금이라도 기부해달라고 했더니 이 사람 좋은 일 핑계대고 피땀 흘려 모은 돈 뺏으려 한다고 거절했고 교회는 친구의 권유를 못 이겨 몇 번 따라 나가기는 했지만 그 목사님이 술을 먹지 말라고 했다고 교회가 사업방해 한다고 발을 끊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게 되었는데 아들에게 이상한 유언을 했다. 자기가 죽으면 상여 네 귀퉁이에 ‘껄’자 한자씩 써놓으라는 유언이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네 귀퉁이에 ‘껄’자를 쓴 종이를 붙여놓은 상여를 나가게 했다. 장례식을 다 치룬 다음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아버지를 잘 아는 친구에게 찾아가 그 “껄”자의 의미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 친구가 한 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지혜로운 대답을 했다. 자네 아버지가 4가지 후회를 했네!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동네 다리나 놓을 껄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돈으로 좋은 일도 좀 할껄,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싸우지만 말고 가난한 이웃도 좀 도울 껄, 이렇게 일찍 죽을 줄 알았으면 교회에 헌금 좀 할껄 하고 후회가 되었겠지. 그래서 상여에 껄 자를 써 놓으라고 한 것일세! 하고 말해주면서 자네도 인생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돈만 모으는 일보다 돈을 쓰는 일에 성공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모으는 일만 하다가 끝내는 사람들이 많다. 돈이란 모아진 돈이 내 돈이 아니라 그 돈을 잘 쓸 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돈을 쓰는 것은 그 인생의 예술이다. 세상에 나도는 돈을 내 안에 모으는 것보다 작은 돈이지만 내 안에 잠시 머무는 돈을 용감하게 쓰는 것이 인생 성공의 지혜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그 세상, 그 인생이 얼마나 허망하게 되는 것인가를 우리 예수님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신다. 성경에 나타난 이 부자가 자신에게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내가 곡식 쌓아둘 곳 없으니 어찌할꼬? 일러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했다는 것이다. 물론 뿌린 대로 땀 흘린 대로 거두는 것이 농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풍성한 소출이 나오게 한 것은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칭찬할 일이고 본받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출자체를 가지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내가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내가 이제는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리라 어떻게 더 크게 곳간을 지어가지고 쌓아두리라! 성경 어디를 봐도 ‘내가’ ‘나’라는 말이 여기보다 많이 나오는 곳이 없다. 이 부자가 ‘나’를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된 사람은 감사를 모르고, 나, 나라고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부자에게 “이 어리석은 자여!”라고 부르신다. 생각해보면 이 사람처럼 여러 해 쓸 것을 쌓아놓은 다음에 이렇게 하기도 하고 저렇게 하기도 하고 그리고 평안이 쉬기도 하리라!’ 계획하는 사람인데 대단히 성공한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신다.
돈, 그것만 취하면 다 얻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가지고 살면 좋은 것 다 잃어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비유이다. 세상을 물질로만 보는 습관에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다운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미국 상하의원에서 멕시코 대통령이 연설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내가 멕시코 대통령으로써 이말 하는 것 부끄럽지만 일찍이 이곳에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오늘날 이렇게 잘 사는 미국이 되었고 일찍이 금과 은을 찾아서 중남미에 온 사람의 후예들은 이렇게 못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여러분은 제 고향 양조장의 소문난 부자처럼 후회 막심한 죽음을 맞이하겠는가?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왔다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지혜이겠는가? 물질숭배 사상에 찌든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나이 들어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복음이겠는가? 하나님이 오늘 밤이라도 내 영혼을 부르시면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가장 보람 있는 일에 쓰고,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고 헌신해야 할 줄 믿는다. 한번 진지하게 엄숙하게 고민해보셨는가? 내 몸 하나 편안히 지내기만을 위해서 돈을 벌어 모으지 않고 보람있는 일에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나는 얼마나 썼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것 아니다. 은혜도 모르고 그래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끝내 자기 육체의 편안한 생활만 생각하며 재산을 쌓아놓은 부자를 향해서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내가 네 생명을 부르리니 그 모든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랬다. 이 말씀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는 우리들 육체의 남은 때를 계산하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우리들을 향해서 우리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주시는 음성이다. 아니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는 영혼에게 은혜가 되는 복음인 줄 믿는다. 오늘 이 아침 이 귀한 복음을 받아 마음에 굳게 믿고 남은 인생에는 물질을 쓰고, 그리고 나누어주고, 드리고 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