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저는 30대 중반에야 아들을 얻었다. 얼마나 사랑스런지 몰랐다. 아이가 아플 때면 속이 얼마나 아픈지 말로 표현이 안되고 손에 일도 안 잡혔다. 그런데 장모님이 와서는 “괜찮다! 다 크려고 그런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때 그 말이 참으로 서운했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그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보면 아프고 나면 훌쩍 커있고 똑똑해진다. 감기를 앓거나 치킨박스를 앓고 나면 눈빛이 빤짝빤짝해진다. 왜냐면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벤저민 프랭클린은 “고통은 인간에게 가르침을 준다”고 말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는 두 번이나 버림을 받는다. 첫 번째는 부모에게 받는 버림이다. 물론 부모가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숨겨둘 수 없기 때문에 갈대상자에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버림받음이 그 인생의 축복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모세가 부모에게 버림받지 않았다면, 부모가 그를 붙잡았다면 그는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부모가 손을 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 인생의 축복이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모세가 자기 동족으로부터 받은 버림받음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애굽사람을 죽였는데 그 다음날 나가보니 이번에는 그 형제들끼리 싸운다. 모세가 화해를 시키려 하자 ‘누가 당신을 우리의 법관을 삼았는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우리를 죽이려는가?’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바로가 이 사실을 알았겠는가? 사건현장에 있던 자기 동족이 모세가 그 애굽사람을 죽였다고 고발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도망을 간다. 결국 동족에게 버림받은 것은 두 번째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쫓겨간 곳, 버림을 받아서 가 있는 광야가 그가 축복을, 위대한 인물로 변하는 장소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스데반은 행전7:31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광야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40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가운데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귀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그랬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40년 동안 궁중에서 생활했었을 때에 모세가 주의 소리를 들었다는 말이 없다 그러나 광야에 갔을 때 비로소 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광야에서 들려오는 것이다. 모세도, 다윗도,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나온 사람이다. 우리 주님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고 기도하셨다.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을 지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광야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이 광야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질병에 눕혀놓고 병상에서 말씀해주시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에 잘 듣지 않으면 병상에서 듣게 된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실패가 광야일수 있다. 사업실패, 인간관계실패, 이런 아픔과 허탈을 통해서 광야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분! 죄가 있어서 광야를 만난 것이라고 정죄지 말라.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을 사랑하사 음성을 들려주시려고 광야로 보내시는 것이다. 의로운 요셉도 13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다. 애굽에 종살이를 했고 감옥생활도 해야 했다. 그가 죄가 있어서였는가? 아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그는 죄의 유혹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유혹을 극복한 까닭에 그가 들어간 곳이 감옥이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종종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넓은 길이 있어도 성도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면 그 좁고 어려운 길을 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광야를 누구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가정에도 고통은 올 수 있다. 버림받는 아픔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버림받음이, 고난의 광야가 축복의 장소요, 훈련의 장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크게 쓰시기 위해서 예비하신 장소라는 것을 명심하자. 실패와 좌절을 어려움을 경험할 때 낙심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서 우리를 훈련시키고 싶어서 오늘 이런 고난의 광야에 우리를 몰아넣으신 것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깨지고 홀로 서며 인내케 하시는 훈련들을 잘 받아 우리 남은 인생 후반전에 승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