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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속도보다 내실입니다

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의 세월호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수장된 것은 꽃다운 우리들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부조리, 불합리, 이기적 보신주의로 말미암은 한국 사회와 외형적 급성장에 눈이 어두워 온갖 세속적이고 부조리한 기복주의, 신비주의, 자유주의에 물들고 병든 한국교회였다. 이제는 빠른 속도보다는 천천한 내실이라는 깨달음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가치와 복음의 본질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조금 느려도 궁극적인 삶의 실천으로 연결해 나가야 한다. 조금 느리게 걸으면 느끼고 감사하고 더 많이 나누고 사랑하고 나누어야 할 하나님의 은혜, 복음적 가치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쌍소(Pierre Sansot)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Du Bon Usage de la Lenteur)라는 책이 출간되어 한 때 논픽션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쌍소는 이 책을 통해 속도 경쟁 시대에서 쫓기듯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느림의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여유 없이 ‘빨리빨리’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내서 발걸음 닿는 대로, 풍경이 부르는 대로 걸으며 ‘나’를 맡겨 보고, 다른 사람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도 보고, 한가로움을 즐기며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권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고 도태나 일탈도 아니다. 빠른 속도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접근하는 삶의 방식의 문제이다. 삶의 길을 가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며, 조금 천천히 둘러 가더라도 인생의 근본을 바로 보자는 의지로서의 느림을 의미하고 있다. 바쁘다고 건너뛰지 않는 의지, 시간이 뒤죽박죽 되도록 허용치 않는 의지, 그리고 우리가 어느 길에 서 있는지 주변을 살피면서 가는 느림이다. 아울러 그는 ‘여유로움’이라는 내적 통찰을 강조하고 있는데, 빨리빨리 살면서 놓쳤던 삶의 의미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빠른 속도보다 천천한 내실이 자신을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급한 성격을 가진 민족 중의 하나다. 한때 ‘은근과 끈기’를 민족적 자부심으로 여기더니 어느새 ‘빨리빨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보편적 선으로 자리잡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서 느림은 ‘탈락’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 더 많이 움직여,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의식을 강제하기도 했다. 6.25동란이후 잿더미와 같은 우리 조국을 일으키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방식이었다. 그 결과 ‘빨리빨리’는 오늘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원동력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결합된 신속성은 놀라운 제품 생산력으로 나타나 세계의 인정을 받았고, 자동차, 가전, 건설, 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고, 특히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IT산업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게 했다.

반면에 ‘빨리빨리 문화’가 치른 대가는 어떠한가? 부실, 불법 시공의 결과 대표적으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 숱한 안전사고로 ‘사고 공화국’의 오명을 쓰더니 마침내 내 자식들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하는 엄청난 국가적 재앙을 불러왔다.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고속 성장, 초대형교회, 선교대국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며 달려온 한국 교회가 최근 연이은 대형교회들의 대형사고로 말미암은 적폐현상이 기독교 안티들에게 얼마나 좋은 먹이감이 되고, 수많은 영혼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제라도 속도보다 천천한 내실이다. 빨리 먹는 것보다 소화가 중요하고, 사람을 빨리 많이 아는 것보다 천천한 만남, 진실한 만남이 더 중요하다. 빨리 열리는 페이지보다 천천히 음미하며 볼 게 많은 페이지가 낫다. 스마트 폰이 책의 향기를 뺏어가고, SNS가 깊은 사색을 어렵게 하며, 빠른 검색 기능이 생각과 문화의 깊이를 차단하고 있다면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 포장된 상식보다는 알찬 내실을 선택해야 한다. 이 시대의 섹스피어는 속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느림에서 나온다. 창의력은 속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묵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새해에는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익어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성경을 빨리 통독하는 것보다 좀 더 깊이 주님을 아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깊이 알수록 십자가 복음의 진한 향기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힘써 여호와를 깊이 알자!(호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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