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300여명의 꽃다운 자녀들이 숨진 세월호 사고 200일을 지나오면서 온통 한국은 세월호 격랑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지난한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한국은 또 다시 대형사고가 터졌다. 지난 17일 오후(한국시간), 서울 인근 성남시 판교 테크노벨리에서 걸그룹(포미닛) 공연 중 발생한 환풍구 붕괴사고로 16명이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고 입원 중이다. 환풍구 붕괴사고 단순히 숫자를 비교하면 여타의 사건에 비하여 아무런 관심조차도 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사건의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세월호 사고와 아주 유사한 안전사고의 전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만 주의하고 관리했으면 얼마든지 미연에 막을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인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LA타임스를 비롯한 뉴욕타임스, CNN, AP, AFP 등은 사고소식과 함께, “한국이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경제 기적을 일궜지만 안전과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잇단 대형사고가 발생, 전국민적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하면서 다소 조롱조의 논평을 내고 있다.
LA타임스는 지난 4월 300여명이 숨진 세월호 사고를 중심으로 올 한 해 동안 발생한 대형 사고를 일일이 열거하며 안전의식 부재를 질타하고 나섰다. “세월호 이후로도 5월 초 서울 지하철 추돌사고로 200여명이 다쳤고, 같은 5월 말에는 전남 장성의 노인 요양병원 화재사고로 21명이 사망했으며, 앞서 2월에는 경주에서 무너진 리조트 강당 건물에 깔려 대학생 10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논평은 우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남영호 침몰과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때도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국은 20년 전 사고에서 전혀 배운 게 없다” 이외에도 1994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끄러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호들갑을 떨면서도 냉정하게 사건을 분석하여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물론이고,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책을 세워나가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점진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속성가운데 냄비근성이 있다. 어떤 문제가 터지면 마치 냄비의 끓는 물처럼 요란하게 떠들다가 몇날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러냐는 듯이 금새 식어버리며 쉽게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고마는 게으른 속성이다.
뉴턴의 운동의 법칙가운데 “관성의 법칙”이 있다. 제1의 법칙이라 불리는 “관성의 법칙”은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속성을 의미한다. 즉,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운동을 하려고 하고,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일정한 충격이 오면 저항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는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에네르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관성’(inertia)의 어원은 ‘게으르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iners’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우리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도, 신앙의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가끔씩 영적 도전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쉽게 감동하며 흥분하는가! 그러나 조금 지나면 우리는 원래의 모습으로 쉽게 합리화하는 관성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용한다. 의로운 분노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원래 인간이 다 그런 거지” 하면서 우리는 쉽게 세속화와 타협하려는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올해로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았다. 종교개혁(reformation)은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어둠의 시대, 중세 1,000년의 교황권의 부패와 교회의 타락에 머물러있던 관성의 법칙을 깬 위대한 하나님의 사건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세속화가 인류역사가운데 가장 어둠의 시대였던 중세시대를 능가하고 있지 않은지 반추해보아야 한다.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에서 한국교회의 모습으로 반추된다. 한국사회의 병폐는 곧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열매는 아닌가!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였던 초대형 교회와 최고의 성공자로 자타가 공인한 모 목회자의 모습에서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대형 사고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대형교회 모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4년 만에 노회재판에 회부될 전망이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배금주의(拜金主義), 학벌, 외모 지상주의, 명예주의, 성공주의, 내실 없는 스펙주의와 같은 관성의 법칙들이 깨어질 때에 비로소 병든 사회, 신음하는 교회가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