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Coffee! 7 Euro △Coffee Please! 4.25 Euro △Hello Coffee Please! 1.4 Euro. 우리말로 바꾸면 △커피-라고 반말하는 손님은 ‘1불’을 △커피주세요-라고 주문하는 손님은 ‘60센트’를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라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주문하는 손님은 단 ‘20센트’만을 지불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기발한 가격표를 만든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그 카페에서는 말 한 마디를 예쁘게 하는 것으로 똑같은 커피를 1불의 5분의 1가격인 20센트로 마실 수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예쁜 말,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칭찬과 격려와 긍정적인 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가득 담긴 말, 감사와 기쁨과 행복한 말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말을 따라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그 말이 사람을 살립니다. 특히 가까운 관계여서 마음 편히 부담이 없는 부부간에, 자녀들에게,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에게 혹 나이나 학력, 경력, 지위 등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외되고 외로운 지체일수록 그리고 막 대하기 쉬운 상대일수록 더욱더 그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받고 좌절하고, 말 한마디 때문에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됩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복음이 우리들을 통하여 희미해져 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들을 타고 흘러가 만나지는 사람들을 살려 더욱더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말”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의 말이 오고 갈 때 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무엇이든지 막히면 좋지 않습니다. 혈관이 막히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교통이 막히면 정체가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막히면 온갖 오해와 불신이 생깁니다. ‘붕어빵 3개에 1000원, 1개에 200원’. 붕어빵 가게에 붙여놓은 가격표입니다. “이상하네... 많이 사면 더 비싸다니.” 그러던 중 붕어빵을 사러 온 남루한 행색의 할머니와 아저씨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붕어빵 한 개만 부탁해요.” “네, 여기요. 할머니 맛있게 드세요.” 가끔 찾아와 붕어빵 한 개를 사가시는 할머니. 한 개 밖에 살돈이 없는 할머니를 위한 아저씨의 배려였고 그 할머니로 인해 붕어빵 아저씨는 척박한 인생 안에 새로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되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열려 그 열린 마음의 길로 이해와 배려와 용서, 관용과 자비 그리고 긍휼과 사랑의 말이 오고 갈 때, 거기에는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중간에 꽉 막히면 아무리 예배드리고, 기도해도 허공을 맴도는 허무하고 소모적인 시간이 될 뿐입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막힌 곳이 뚫어져 왔다갔다 소통해야 합니다. 그렇게 열려진 길로 예배와 말씀과 기도가 오고갈 때, 예배와 말씀이 나를 살리고 기도도 응답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통 교제함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고백하며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양하리로다.” 영광 돌리는 생활 신앙, 살아 꿈틀거리는 믿음을 사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어 “믿음의 좁은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만나는 자들에게도 같은 생명의 체험을 나누고자 전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생산적인 신앙입니다. 말은 “생명”입니다.
엄마가 장난꾸러기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갑니다. 이리저리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아들이 갑자기 얼굴이 울그락거리며 뛰어와서 엄마에게 하는 말이 “엄마! 산이 나를 싫어한데”라고 이릅니다. 엄마는 조용히 아이 손을 붙들고 아이가 그 소리를 들은 곳으로 데려가서 “얘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보렴.” 아이가 힘껏 외치자 조금 후에 “사랑해, 사랑해”라는 소리가 그 아이의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엄마는 “산은 변덕쟁이인가봐, 나를 싫어했다가, 사랑한다고 하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아들아, 네가 산을 사랑하면 산도 너를 사랑하고, 네가 산을 싫어하면 산도 너를 싫어한단다”고 들려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받기만을 바라는 이기주의적인 사랑이 아니라, 누구든지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돌아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먼저 내가 하는 것이 신앙의 지혜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6:31)
“말”은 “생명”입니다. 점점 각박한 세태 속에서 “내가 하는” 믿음의 말, 은혜의 말, 희망의 말, 칭찬과 배려와 용서와 이해의 말 등등을 통하여 “내가 있는 곳”이 가정이든, 교회이든, 직장이든, 그 어디든 “내가 있기에, 나로 인하여”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변화되고 생명의 역사가 창조되는, 하나님 나라의 작은 꿈을 이 가을에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