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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나무골 텃밭 이야기(9): 목사의 습관 바꾸기

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 가스펠교회)

직업병이라는 것이 정말 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말을 의사 친구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목사의 직업병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을 가르치고 설득하려고 하는 설교병증이라고 해서 공감하며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사실 설교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은사와 소명 때문에 설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항상 안고 살아갑니다. 성경 본문을 갖고 주의 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하길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먼저 씨름해야 하지만,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삶과 믿음, 필요와 고뇌를 아는 목사이기에, 설교를 통해서 그들의 생각과 말과 삶이 바뀌어질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님의 절대적인 역사가 있어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설교자는 성도들을 위해 죄와 허물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바른 길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습관적인 강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이런 습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걷기 전에 엔지니어로 사업가로 살면서, 항상 발생하는 사고나 갈등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해결책을 모색한 후 문제를 시정하고 고치는 삶이 이미 몸속에 뿌리깊은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문제 뿐 아니라 자녀교육과 가정생활까지 문제가 보이면 철저하게 분석해서 빨리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거의 본능적으로 작동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마치 무슨 해결사나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향해서는 영적인 경찰관이었고, 문제가 있는 성도를 보면 수술을 하려고 하는 영적인 외과의사 같이 굴었습니다.

항상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Doer), 잘못된 것은 고쳐야하고(Fixer), 문제는 해결해야만(Problem-Solver) 했습니다. 그런데 뒷마당 텃밭에서 농사를 몇 년 지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첫 해는 내가 씨도 뿌리고 물도 주니 화초나 채소를 내가 키우고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성도들이나 이웃에게 결실을 나눠주며 내가 잘해서 농사를 잘 지어서 수확을 거둔 듯 으쓱대었습니다. 그러다 거동조차 불편한 어느 노부부가 사는 집에 전도하러 갔다가 망신만 톡톡히 당했습니다. 텃밭의 열매들은 크기나 맛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뛰어났고, 아름다운 화초들은 에덴동산에 온 것 같았습니다. 영감님의 말이 작년에 땅에 떨어진 씨앗들이 저절로 자란 것이고 물도 시간 맞춰줄 뿐 자신들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머님은 비결이 하나 있다면, 뒷마당에 나가서 텃밭을 바라보면서 그저 내 새끼들 이뻐하고 같이 있어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텃밭의 채소나 화분의 화초들일지라도 주인의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성도들 옆에서 그저 그들과 함께 있어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해주는 목사로 살지 못했음을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목사의 병적인 습관을 고쳐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워낙 오래된 직업병인지 쉽지가 않습니다. 내 의지, 내 생각, 내 주장, 내 방법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주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는 주님의 방법이 채워지고 역사하기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내 욕심, 내 고집을 비우면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충만함이 그 빈자리에 가득 차게 됩니다. 웅변보다는 때로는 침묵이, 설득보다는 때로는 기다림이, 섣부른 행동보다는 차라리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용히 묵상함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체험을 배워갑니다. 목회는 주님이 하시는 사역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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