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뉴스위크지가 21세기의 C. S. Lewis라고 칭찬하고 달라스 윌라드가 이 시대에 가장 주목할 목회자라 격찬한 뉴욕 맨해튼의 리디머장로교회 담임인 팀 켈러 목사가 쓴 책 중에 “왕의 십자가”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그 모습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춤을 추는 장면이라고 하였다. 성자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인간 세례 요한에게 기꺼이 세례를 받으신다. 성부께서는 그 아들을 칭찬하시고 성령께서는 비둘기의 형체로 고요히 그 자리에 임하셨으니 그것이 얼마나 합당한 묘사인가! 그러면서 팀 켈러는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춤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춤추시는 하나님의 춤 속에 함께 뛰어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춤추는 자의 행복이 신앙생활의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도 둘로 나뉜다. 구약 성경에 동시대에 살았던 사울과 다윗처럼. 사울과 다윗은 어떤 면에서 출발점이 비슷하다. 사울은 개인은 탁월하였지만 사울이 속한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 어쩌면 가장 보잘것없는 지파에 속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비록 탁월한 지파의 출신이었지만 그 가정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막내였다는 사실과 궤를 같이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시작점에서 겸손했다는 사실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이후 그들이 걸어간 길은 너무나도 달랐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에 급속히 교만해졌다. 왕이 되었으니 제사쯤이야 자기도 집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전쟁에서 이기면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기에 바빴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척만 할뿐 실제로는 순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만이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왕이 될 기미가 보이면 이유 불문하고 그 싹부터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하였다. 사울은 절대 하나님과 춤추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나 홀로 춤을’ 추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다윗은 끝없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되는 자체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앞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사울의 눈에 들어 군대의 장이 되었다가 그의 시기로 천부장으로 강등되었지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며 고생이 극심했지만 사울을 죽일 두 번의 결정적인 기회 앞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앞세워 그를 죽이거나 죽이는 일을 방조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사울이 죽고 난 이후에 무기력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북쪽 이스라엘을 쳐들어가기만 하면 남북통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나라가 스스로 붕괴될 때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다윗이 피동적이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춤추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실까? 원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렇게도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면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는 실로 하나님과 함께 춤추기를 원하였다. 몇 주 전에 우리교회는 직분자를 선출하였다. 20명 후보 중에 16명은 당선되고 4명이 낙선되었다. 사실 직분자를 선출할 때마다 적잖은 후유증을 경험했던 우리교회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간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이고 교인들 중 다수가 바뀐 형편이라 고민은 더 깊었다. 그래서 목사 입장은 다 당선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어서 교인들에게 전체를 지지하는 쪽으로 부탁하며 선거운동 아닌 선거운동을 했다. 그런 결과 대다수가 당선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낙선한 이들이다.
그들도 선거 직전까지는 결과를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하였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들고는 충격이 컸다. ‘왜 하필 우리만?’ 떨어진 이가 적었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다. 백 마디 말로 위로한들 그 서운한 마음을 다 감쌀 수 있겠는가? 처음에 힘들어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모두가 평정의 마음을 되찾았다. 교인들이 그들을 집중적으로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아픔을 이겨나갔다. 목사 역시 몇 번을 찾아가 그 마음들을 다독였다.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 내린 결론.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면 받아들이자!’ 그러고 보니 전에 낙선한 네 명이 이번에 모두 당선되었다. 그들도 참 힘든 시간을 보냈었지만 굳굳이 참아 견뎠고 결국 모두 당선되었다. 아픔만큼 성장하면서. 다시 이번에 낙선한 이들을 위해 더 기도한다. 부디 하나님과 함께 춤추는 자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