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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가볍게 쿡 찔러서...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지난주에 우리교회는 새 교회당에 입당한 이후에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미뤄왔던 교육관 리모델링을 마쳤다. 그 중에는 본당 입구에 있는 낙후된 화장실 수리도 포함이 되었다. 기왕이면 남자화장실에는 자원을 아끼고 환경도 보존되는 소변기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워터프리” 소변기로 시공했다. 물을 내리지 않고도 소변기가 깨끗해진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이런 소변기를 쓰면 엄청난 양의 물을 아낄 수 있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볼 일을 보다 보니 이 소변기의 하수구 바로 위에는 작은 파란 조개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왜 이렇게 생뚱맞은 자리에 생뚱맞게 조개그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는데 “넛지”(Nudge)라는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우선, 넛지라는 말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이다. 즉 강요하지 않지만 탁월한 선택을 하도록 시선을 옮기게 해주고 마음이 끌리게 함으로 성공시키는 자극이랄 수 있다. 그래서 넛지 효과라는 말은 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있는 스키폴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 중앙부분에 검은 색 파리가 한 마리 그려져 있다. 대개 남자들은 볼 일을 볼 때 조준하는 방향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변기주변이 더러워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내가 공부한 신학교 남자화장실에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관리집사가 보다 못하여 “한 걸음만 더 앞으로”라는 애처로운 문구를 써 붙여놓은 기억이 난다. 한데 그 공항화장실 소변기에는 파리 한 마리를 그려놓으니까 남자들마다 볼 일을 볼 때 파리에 정조준을 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목표물이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게 되고 자연히 발사물을 변기 가운데 맞출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낸 아드 키붐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했더니 경이롭게도 화장실이 80%나 더 깨끗해지는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우리교회 소변기의 조개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파리 대신 파란조개를 그려넣은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교회 칼럼에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남자교우들에게 파란조개를 잘 맞추자는 우스운 주문을 하기도 하였다.

목회사역에도 넛지 효과는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매주일 모이는 교인들에게 목회자들은 결국 ‘옆구리 가볍게 쿡 찔러서’ 신앙생활 잘하자고 독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세게 찌르면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기는커녕 시험들기 딱 알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찔러주지 않으면 양과 같이 자존능력, 방향감각이 부족한 교인들은 자칫 우리를 떠나 길 잃고 헤매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지혜롭게 옆구리를 찔러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 할수록 넛지 효과는 전체에게보다 개인에게 적용할 때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는 서로가 다 바쁘기 때문에 전체 교인에게 강단에서 필요한 말씀을 공급하면 그 말씀을 의지하여 잘살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인들의 삶의 정황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힘들어 한다. 그래서 일대일로, 맞춤식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절실한 것 같다. 이것이 요즘 심방을 다니면서 더 배우게 되는 목회의 지혜다. 물론 심방을 원치 않는 이들도 제법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들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찾아와주는 목회자에 대해 고마워한다. 교인들의 사정을 충분히 들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옆구리 쿡 찌르듯 일깨워주고 기도해주는 것을 통해서 새 힘을 얻는 교인들을 보면서 종종 목회의 보람을 경험한다.

넛지 효과는 목회자 자신을 위해서도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고립된 이민목회의 현장에서 다른 동료들과 적절한 교제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목회자로서의 정체성, 방향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이가 있는 목회자는 행복하다. 언젠가 교회연합사역을 하며 지친 마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교회일로도 바쁜데 연합사역까지 하니 그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곤고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함께 동역하는 목회자들이 이런 나의 사정을 눈치챘는지 나를 격려하느라 애를 썼다. 내 대신 분주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들을 대하면서 사랑받는다는 생각에 감동이 되었다. 그래서 약간 그 사랑을 즐기기도 하였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몸도 마음도 추스르고 다시 사역에 힘을 냈던 즐거운 기억이 난다. 지친 나를 옆구리 가볍게 쿡 찔러서 용기를 내게 도와준 것이다. 내 옆구리를 쿡 찔러서 정신 차리게 해주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잠언의 말씀이 생각난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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