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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나무골에서 가꾸는 텃밭 이야기(2): 잡초 사랑

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 가스펠교회)

유난히 따뜻하고 가물었던 캘리포니아의 겨울을 떠나보내는 봄비가 며칠 째 계속 내렸습니다. 얼마나 대지가 가뭄에 목말라 있었던지 퍼부어대는 빗물을 마치 스펀지같이 빨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그치자 누렇게 타 들어갔던 잔디밭과 앙상하게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던 참나무 가지들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새순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양지바른 언덕 위에선 벚꽃들이 서둘러 만개하며 미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고자 뒷마당에 나가 쌓인 낙엽도 치우고 텃밭에도 새로 부식토를 썩어 파종을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랜 가뭄 속에서도 텃밭에는 수많은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인의 따뜻한 눈길과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도, 비 한 방울 없이도 어느 누구의 보살핌 없이 씩씩하고 아름답게 그 소박한 자태를 드러낸 소위 잡초들이야말로 봄의 진정한 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잔디밭의 잡초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이 민들레입니다. 미국 땅에서 자라는 대표적 잡초들 가운데는 민들레 외에도 우리에게 익숙한 엉겅퀴, 씀바귀, 고들빼기, 질경이 등이 있습니다. 이런 잡초들의 약효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건강식품들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요즘은 가정에서 직접 채취하여 발효액으로 만들어 먹거나 요리를 해서 먹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건강식약품 상점들에 가면, 상기 잡초들에서 추출한 약들이 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않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밭인가 손쉽게 구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이러한 잡초들이 농작물과 함께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잡초들은 오히려 농작물에 유익한 곤충들의 서식을 돕고, 심지어 해충들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창조하시면서 보잘 것 없는 잡초들마저도 인간과 동물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천연 약재로 쓰임받게 만드신 것입니다. 인공적으로 심어 놓은 잔디밭이 천연적인 꽃밭과 풀밭을 밀어내고 말았지만, 요즘은 환경친화적인 정원이나 유기농 텃밭을 가꾸는 가정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신선한 먹거리와 천연 약재로써의 효능뿐만 아니라, 각박한 도시의 삶속에서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화려하고 비싼 꽃이나 화분에만 속아온 눈이 뜨이면, 야생화나 잡초와 천연 허브들이 어우러진 보석과도 같은 건강한 텃밭 속에서 사시는 재미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목회도 돌아보면 참으로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채 어리석은 생각과 편견 속에서 사역을 한 게 아닌지 회개가 됩니다. 재력 있고 유능한 장로, 음식 잘하고 목사에게 잘하는 권사, 똑똑하고 충성하는 안수집사들만 있으면 목회는 걱정 없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치 작은 텃밭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기 있고 풍성한 열매를 자랑하는 스타플레이어도 소중하지만 이름도 없이,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텃밭을 지키는 잡초 같은 신자들이 있어서 교회는 그 생명력을 유지해갑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을 하면서 함께 뽑은 잡초들을 낙엽과 함께 부식시켜 만든 흙은 비료가 되어 새로운 열매를 맺는 일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작년 봄에 민들레 뿌리를 말려 커피 원두처럼 볶아서 차를 만들어 놓고 성경공부 모임이나 기도 모임에 오는 교우들을 대접했더니, 그 향과 치유 효과에 반한 분들이 올 해는 자신들도 유기농 허브차를 만들겠다고 졸라댑니다. 차 한 잔에 마음의 문을 열고, 차 한 잔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며 주님을 만나고 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영혼의 텃밭에는 결코 잡초도 값비싼 화초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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