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제가 시무하고 있는 뉴욕 롱아일랜드 참사랑교회에 출석하는 한 청년 자매가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지난주에 바이올린 졸업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그 청년 자매와 대화를 나누던 중 스승이셨던 분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이 와 오늘 지면으로나마 간략히 소개하려 합니다.
그 분은 1987년부터 줄리아드 음악학교 교수님으로 계셨고 1994~2007년 학장을 지내신 Stephen Clapp 교수님이십니다. 코네티컷에 있는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장로님이시기도 합니다. 지난 수년간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의 열린 공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더불어 성경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줄리아드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8시30분에 자기의 레슨실인 541호실에서 부임 후 지금까지 아이들과 더불어 기도모임을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줄리아드 학교의 크리스천 휄로우십 그룹인 Juilliard Christian Fellowship과 Korean Campus Crusade for Christ를 오랜 기간 후원하여주시고 어드바이저advisor로써 서포트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레슨 중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해주시면서 항상 재킷 안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셔서 중보기도 제목을 적으시면서 기도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매년 학기 초만 되면 코네티컷에 계신 선생님 댁으로 15명 남짓 되는 모든 제자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여주시고, 오고 가는 차편까지도 손수 부담하여주셨다고 합니다. 학기 말엔 꼭 학교 옆 선생님 단골음식점에서 점심으로 학기의 마지막을 축하해주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지난 2010년 학기말 즈음 학생들에게 폐암이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지난달 1월 29일 하나님 부르심을 받기 직전 한주일 전까지 근 3년 동안 사모님과 따님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를 타시고 혼신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셨고 제자들을 붙들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기도해주셨다고 합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크렙 교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기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들려지도록 최선을 다해 천국을 준비하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그냥 줄리아드 음악학교의 바이올린 교수로만 잘 가르치며 살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이 존경 받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 결과 크렙 선생님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많은 제자들과 그분을 만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되어가는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뒤를 이어 그들의 삶으로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주은 자매의 고백이 오늘 저의 가슴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더 강하게 제자들 가운데, 학교 한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심이 느껴져요. 오늘 제 졸업연주회도 하나님과 교수님을 마음에 떠올리며 그분께 들려 드리고 싶어요” 이미 크렙 교수님은 줄리아드 음악학교와 그가 생명처럼 아꼈던 제자들과 그를 만난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이 시대에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전 인생을 진솔하게 “삶”으로서 예수를 전하신 작은 그리스도(Small Christ)이십니다. 마음 깊이 고개가 숙여집니다. 문득 고 함석헌 옹의 시 한편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가 떠오릅니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어느 때인가, 어디에서인가 그 다음을 이어가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가진 그대는 행복이어라. 그 사람을 가진 세상도 행복이어라. 그대를 가진 세상도 행복이어라. 크렙 교수님을 가진 그대는 행복이어라. 크렙 장로님을 가진 세상도 행복이어라. 크렙 장로님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그대를 가진 세상도 행복이어라. 천국에 계실 크렙 장로님을 그려봅니다.